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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36장 32-38 그래도 구하여야 하리라(22.11.20-12.11)
김태규 2022.11.20 조회 809

3632-38 그래도 구하여야 하리라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포로되어 있을 때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의 처지가 얼마나 볼품없이 되었는가를 오늘 본문은 <무너짐, 황폐, 황무, 황량>이라는 말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이 이 짧은 본문에서 무려 8번 이상이나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처지가 너무나도 형편없게 되었음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처지에 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황폐하고 황량한 유다를 에덴동산같게 하실 것이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37절에서 보는 바대로 그렇게 은혜를 입히시려고 하니 기도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3가지 진리를 가르침 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자를 징계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은혜를 입히신다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따라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들을 징계하신다는 것부터 보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3차에 걸쳐 바벨론의 침공을 받게 하셔서, 유대나라는 완전히 황폐해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가 포로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했던 이유는 31절에서 <이스라엘이 악한 길을 걸었으며, 좋지 못한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으며, 32절 하반절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라는 말씀을 통하여 징계의 이유를 알게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시1편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칩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망의 길인 <악인의 길, 죄악의 길>로 걸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좋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해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범죄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지금은 형편없는 처지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 백성들을 징계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316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이렇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게 되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왜곡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심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에 질투도 하시고 진노도 하시고 징계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미리 이르시기를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계명을 잘 지켜 행하면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무시하고 방자히 행하면 3-4대까지 벌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하나님은 자녀를 대하는 부모와 같은 성품을 가졌다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부모치고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더 예뻐 보입니다. 남의 자식은 그저 덤덤하게 보지만, 자기 자식이 뭐 하나 잘해 놓으면 그것이 별게 아닌데도 큰 자랑거리로 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니까요! 그래서 좀 못해도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면서 격려합니다. 왜입니까?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매일같이 그러한 시선으로만 보십니까? 아니지요? 때로는 잘못한 것을 지적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호통을 치기도 하고, 매를 때리기도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럽니까? 미워서 죽으라고 그러는 것입니까? 잘못을 고치고, 결국은 그들이 잘되라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가 인간인지라 완전하지 못하여 감정과 혈기가 섞인 매질을 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하는 내 자식이 탈선하지 않고, 세상에서 뒤지지 않고 잘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혼내고 벌세우고 매를 때리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수욕을 당한 것도 바로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매질하시다가 노를 거두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을 봅니다.

그 내용이 33절부터 36절까지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는 거니는 사람들이 다시 있게 하겠고, 황무한 땅은 경작이 되게 하겠고, 무너진 성읍은 다시 건축되게 하여 그 성읍이 에덴 동산같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에덴동산은 인간타락 이전에 누렸던 자유와 기쁨이 있었던 동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차 이스라엘이 최상의 자유와 기쁨의 낙을 누리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하나님이십니까? 얼마나 은혜로운 하나님이십니까? 죄를 미워 혼내시지만 결국은 복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1).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32절에서는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 이유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데 있다는 것입니다.

 

2).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범죄했을지라도 복을 주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그들을 지속적인 징계로 짓밟히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 43:3, 10절을 보면,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 박해자들로부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수치는 하나님 자신의 수치와 직결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복시켜 영광을 얻으시려는 것입니다.

 

3). 어떻게 회복시킬 것입니까?

55:11에서 보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되게 해 주겠다>고 하신 말씀은 이제 그대로 될 것입니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사람의 흔적이 끊겼던 곳에는 거니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고, 후손들이 번성할 것이며, 에덴동산 같은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이렇게 복 받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만히 뒷짐 지고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37절에서는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새로운 복된 역사를 이루실 것인데, 그래도 이스라엘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필연성을 보게 됩니다.

 

1). “래도 기도하라라는 말씀은 어떤 교훈을 줍니까?

하나님이 모두 알아서 할 것인데 무슨 기도가 필요한가? 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도하라고 가르치고,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일하라고 가르칩니다. 열심을 내어 섬기라고 가르칩니다. 절대로 행위의 수고가 무의미 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12:3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합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했습니다. “냉수 한 그릇의 봉사에도 상급이 있다고 하시면서, 행한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섭리해 나가시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를 게을리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도에 열심을 내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기 까닭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영적인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래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된 것으로 공급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기도함으로 받으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렇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다면 우리의 태도가 어떠하겠습니까? 감사 감격하여 어쩔 줄 몰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뭔가가 내 손에 들어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아니고 <! 내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이렇게 되었다!>라고 하면서 우쭐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사람들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것이 옳습니까? 후자의 자세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처지를 바꾸랴?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지나칠 정도의 문제가 있어 그것이 기도의 제목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가끔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문제는 아예 기도하기를 포기하는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할 만큼 큰 문제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지금 그들이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당시의 세계 최강국인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그들이 바벨론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기도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우리 열림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위 불신자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할 것이고,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기도제목에 의해 둘러싸인 상태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수시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현장을 에덴동산 같이 가꾸신다고 합니다. 기도하심으로 이런 은혜와 복을 누리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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