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7장 9-17 복음은 나누어야 한다(25.04.27)
- 김태규 2025.4.27 조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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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7장 9-17 복음은 나누어야 한다. 1, 498, 505
우리는 두 주 전에, 아람 왕 벤하닷이 북이스라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던 사실에 대하여 함께 살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의 느닷없는 침공으로, 사마리아 성이 포위되자, 성안의 사람들은 꼼짝 없이 굶어 죽게 되었는데, 엘리사가 나타나, <내일 이맘 때에 양식이 헐값에 팔릴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굶어 죽을 판인데, 양식이 헐값에 팔리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외친 엘사의 선언은, <복음 그 자체>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죽을 판인데, 살게 될 것이라고 하니, 이게 복음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사마리아 성안의 사람들은, 엘리사가 외친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외친 복음을 들은 한 장관이 외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하는 선지자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장관에게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장관은 정치지도자로서, 성안의 백성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엘리사가 전하는 복음을 아멘으로 받아, 백성들을 살리려고 해야 하는데, 그 복음을 거부하고 무시하다가, 엘리사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그들은 성문 어귀의 4명의 나병환자들입니다. 그들 역시 굶어 죽을 처지였으나, 그들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길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적진으로라도 가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람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면, 어쩔 수 없겠지만, 혹시 살려주면 살 수 있을 것이기에,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움직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람 진영에 도착해 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병거 소리, 말 소리, 군대 소리의 환청을 듣고는, 놀라서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황급히 도망을 쳐버린 것입니다.
이런 기적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4명의 나병환자들의 발걸음 소리를 이용하여, 아람 사람들에게는 병거소리, 말소리, 군대 소리로 들리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돌들도 소리 지르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위하여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들이 항복하여 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적들이 도망치게 하여 살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적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안 4명의 나병환자들은, 이 장막, 저 장막을 드나들면서 먹고 마시고, 보물들을 내어다가 감추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 임자도 없는 것이기에, 그 물건들은 먼저 본 저들이 마음대로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이 아람 진영에서 이런 놀라운 일을 누리고 있을 때, 사마리아 성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사람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자기 자식을 잡아먹고 있었으며, 사망의 공포가 그들을 짓눌리고 있었기에, 그들은 벌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대조되는 상황입니까?
그런데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놓으셨으나,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찬, 영적 사마리아 성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사망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은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역사를 알지 못하기에, 여전히 사망의 성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공포에 짓눌린 사마리아 성안의 사람들에게도,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마리아 성민들에게는 아람 진영에 먹을 것과 누릴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에 대한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으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 10:14절 하반절에서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전해집니다. 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아람 진영에서 먹고 마시고, 감추던 4명의 나병환자들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9절 상반절 말씀을 봅니다.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예, 4명의 나병환자들은, 그들의 식욕을 채우고, 물욕을 채우다가, 갑자기 자신들의 소행이 잘못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들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눈에 보기 좋은 것을 감추고 있지만,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자기 형제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9절 하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은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말은, 사마리아 성안의 사람들의 생명을 건지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기에, 복음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명의 나병환자들은, 이 소식을 전하지 않고 밝은 아침까지 아무 말 없이 잠잠히 있다면, 사마리아 성안의 사람들은 구원의 소식을 모른 채 죽어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임을 깨닫고는, “왕궁에 가서 알리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만 그래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복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 생명의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며, 엄중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겔 3:18절 말씀을 보실까요?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 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9:16절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의 사명은, 나병환자들도, 바울에게도 있을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도전을 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생명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하여, 열림교회 설립 30주년 기념일인 6월 1일 주일에는, 이웃 초청잔치를 엽니다. 따라서, 내가 초청하고 싶은 분을 미리 마음에 정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이날 행사를 위하여 초청장을 판매합니다. 초청장은 한 부에 5파운드로 정하였습니다. 따라서 내가 초청하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미리 초청장을 구입하셔서, 그 초청장을 초청하는 분에게 건내드리고, 그것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은, 열림교회 교우들이 만찬을 나눌 때, 그분들도 함께 동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외국분들도 좋습니다.
유의하실 것은, 초청장 구입은 5월 18일 주일까지로 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음식 준비를 위하여 오실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미리 파악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의 이웃 초청의 날에, 여러분들이 평소에 전도하기를 원하셨던 분이나, 아니면 주변의 친구들을 초청하셔서, 귀한 자리를 만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행사를 준비하고, 또 초청하고, 섬기신다면, 생명 잔치에 함께 하시는 분들은, 영안이 열릴 수 있고, 영의 귀가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병환자들의 발걸음 소리를 이용하셔서, 아람 사람들이 환청을 듣게 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초청받는 분들의 마음도 여실 수 있고, 영의 귀도 여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한 사람도 전도해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번 이웃 초청잔치에서 실적을 내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초청 티켓은 금주부터 준비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병환자들의 심정으로, 초청할 분들을 미리 점 찍으시고, 기도하시면서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10절을 보시면, 나병환자들은 사마리아 성으로 가서 좋은 소식을 전하기로 마음 먹고는, 사마리아 성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문지기를 불러 아람 진영의 상황에 대해서 일러줍니다. <우리가 아람 진에 가보았더니, 한 사람도 없고, 오직 말고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하여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면, 나병환자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며, 자기들이 경험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11절에서 보는 것처럼, 나병환자들의 좋은 소식을 들은 문지지는, 다른 문지기들을 불러, 그 소식을 전하였고, 그래서 그 소식은 왕궁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복음 전파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 보는 것처럼, 왕은 아주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마리아 성이 주린 것을 알고는, 아람 사람들이 덫을 놓았다>고 하면서, <걸려들면 모조리 죽이려고 흉계를 꾸몄다>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말을 듣고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장관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이성적으로 따진다면, 왕의 추측은 전혀 황당무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병환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살던 자들이며, 멀쩡한 자들도 아니기에, 그들의 말만 믿고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함정은 종종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병환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과거의 경험과 이성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이 복음을 배척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과거의 경험과 이성적인 사고를 근거하여, 나병환자들이 전해주는 좋은 소식인 <복음>을 배척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세상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오늘날에도 경험과 이성적인 판단으로 복음을 무시하려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교리에 집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손해를 보곤 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마리아 성의 왕도 이런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살 수 있다는 복음을 받았음에도, 왕은 자기의 경험과 이성을 근거로, 좋은 소식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13절에서 보는 것처럼, 신하 중의 한 사람이 왕에게 요청을 하였습니다. 현재 성안에는 말 다섯이 남아 있으니, 사람을 보내어 정탐을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는 보는 것처럼 그들은 병거 둘과 그 말을 취하여, 아람 진영으로 보내어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마병을 보내지 않고, 병거 둘을 보냈다고 하기에, 아마도 한 병거는 말 2마리가, 그리고 다른 병거는 말 3마리가 끌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마병을 보내지 않고, 병거 둘을 보낸 이유는 설명되지 않기에,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우나, 아마도 허기진 마병이 말을 타고 가는 것보다는, 병거가 더 안전하다고 여긴 것 같고, 또 두 병거 중에서 한 병거가 변고가 생겨도, 다른 한 병거는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병거 둘을, 약간의 거리를 두게 하여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적진으로 가보니, 15절에서 보는 것처럼 과연 나병환자들이 말한 바와 같이, 아람 군대가 급히 도망하는 바람에,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와서 왕에게 그런 사실을 보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16절에서 보는 것처럼 백성들이 아람 진으로 가서 모든 것을 노략하여 왔기에, 그날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켈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사마리아 성의 문제가, 단 하루 만에 해결된 것입니다.
그런데 헐값으로 양식이 매매되는 현장에서, 17절에서 보는 것처럼 상황 통제를 하려던 장관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던 그 장관이, 엘리사의 말대로 된 것입니다. 그는 엘리사의 예언대로, 식량난이 해결되는 것은 목격했지만, 음식은 조금도 먹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한 자에게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도전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내가 이웃에게 전할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를 살피게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로 이루신 피 묻은 복음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생명의 소식이라면, 이웃에게도 생명의 소식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맛본 생명의 복음을, 이웃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복음의 진수를 맛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맛본 복음을 시급히 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회를 따라서 그들에게 피 묻은 복음, 생명의 복음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때 조심할 것은, 그들의 반응이 나의 용기를 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관처럼, 왕처럼 복음을 비웃으며, 나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면, 나병환자들처럼 수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하는 것은 내가 하지만,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능력은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으로 서셔서, 생명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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