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후2장1-17(25.05.10)
- 김태규 2025.5.10 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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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2장1-17 503(373) 408(466)
바울은 앞 장에서 왜 고린도 교회의 2차 방문 계획을 변경하였는가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본장 1-4절에서는 제3차 고린도 방문에 대한 자기의 소신을 밝히는데, 1절을 보면 “다시 근심으로 나아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바울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급히 제 2차 고린도 방문을 하였으나 문제를 수습하기 보다는 피차에 근심과 슬픔만 남기고 돌아서야만 했기에, 이제는 그런 방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록 눈물의 편지를 받은 그들이 회개를 하였으나, 지금 바울이 고린도로 가면 자연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 그리고 바울 자신을 대적하였던 사람들에게는 징계라는 매를 드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에 바울은 고린도 방문이라는 것을 유보하고, 대신에 다시 고린도 후서인 이 편지를 써서 고린도 교회를 안정시키고 피차의 유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절에서는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 주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공동번역)라고 한다. 그래서 3절에서도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들에게 어찌 근심을 가지게 하겠느냐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내 이웃,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대상인가를 배우게 된다. 그들은 나에게 기쁨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기쁨의 대상이 되게 하는가?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의 입장과 형편을 이해해 주고, 살펴주고, 인정해줄 때 가능한 것임을 지금 바울의 자세에서 배울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사실, 문제를 일으키고 대적하는 자들은 개인에게는 물론 공동체에 많은 해를 입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무조건 직설적으로 책망하고, 비판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고, 또 양심의 고통을 안고 있으므로, 이를 감싸면서 깨닫게 하는 것은 효과적일 수 있으나 함부로 책망함은 오히려 그를 폭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잘못한 자들의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것을 5절에서 읽을 수 있다. 바울이 이런 자세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개하고 돌아선 자들은 벌써 한 풀 꺾여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는 벌써 많은 벌을 받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더 나무라거나 냉대하지 말고 그들을 사랑으로 위로하여 더 큰 근심에 잠기지 않게 하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권징의 의미를 본다. 교회의 권징은 그를 넘어지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함이다. 따라서 그 권징은 너무 약하게 하여 죄악을 회개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되며, 지나치게 엄격하여 용서의 여지를 없애버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권징은 마음 아파하면서 하는 것이고, 또한 그 권징을 받는 사람은 부끄러움과 회개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후에 교회는 그를 용서하고 더욱 성숙된 공동체로 발전하는 기회를 가지게 해야 한다. 지금 바울은 그것을 바라고 있다.
12-13절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사역하던 중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으나 눈물의 편지를 디도 편으로 보내 놓고 어떤 소식이 올까 궁금해 한 나머지, 드로아로 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게도냐로 가서 디도를 만났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게 됨을 고후 7장 5-16절에서 볼 수 있다.
14절부터는 고린도 후서를 쓰게 된 본론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서론 격으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인식과 자세에 대해 피력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똑 같은 팩트(fact)가 있다. 복음이라는 것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향기도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향기로,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향기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로 인하여 타인이 그리스도의 냄새를 맡도록 살고 있는가?
기도
1. 남들의 실수를 보면서 손가락질하기 보다는 아파하며 위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2. 제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로 살게 하소서...
3. 내일 있을 예배가 잘 준비되어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소서...
4. 형주가 더욱 건강하고 살도 오르게 하시고, 안인영 집사님과 모친; Denise, Ruth, 배용민, 안혜정, 이찬희, 전은경 집사님의 모친; 실방, 윤영휘 집사님의 부친; 임종호 집사님의 장인과 이수현 집사님의 시부모님들의 건강도 더욱 온전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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