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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2장 8-21 구원의 증표(24.03.17)
김태규 2024-03-17 추천 0 댓글 0 조회 74

28-21 구원의 증표 88, 267(201) 80(101)

 

우리는 몇 주 전에 수 2:1-12절 말씀을 함께 펼치고, <라합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수 2:8-21절 말씀을 함께 펼치고, <구원의 증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며, 피차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이 가까이 보이는 모압 평지의 싯딤(아벨싯딤)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출애굽 과정의 마지막 진을 친 곳이었는데, 지도로 보면 저곳에 머물렀습니다. 저 곳을 <싯딤>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아마도 저기에는 사진으로 보는 것과 같은 싯딤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인데, 싯딤나무란 아카시아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 곳에 머무는 동안,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오늘 본문은 그런 사실은 함구하고, 모세를 이어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두 정탐꾼을 여리고로 파송하였던 사실에 대해서 말씀해 줍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하는 것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교두보를 놓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에, 정탐꾼들의 임무는 막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파송한 두 정탐꾼이 여리고를 정탐하던 중에 신분이 노출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성벽 위에 살던 기생 라합의 집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정탐꾼들이 여리고로 왔다가 라합의 집으로 잠입했다는 소식이 여리고 왕에게 알려지자, 왕은 급히 군사를 풀어 정탐꾼을 잡기 위하여 라합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두 정탐꾼을 자기 집의 지붕에 숨겨 두고는, 그들이 왔다가 벌써 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라합의 이러한 행위는, 생명을 건 모험 그 자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하나는,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 앞으로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될 것이기에, 미래의 땅 주인을 푸대접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런데 요 1:11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 말씀은, 세상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단히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달랐지 않습니까? 장차 가나안의 주인 될 사람들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들을 영접하여 생명을 보호받도록 예우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주경학자였던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 시킨 사실에 대해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승리할 확률은 백만 분의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무기도 없었고, 40년간 사막을 건너온 유목민들이었으며, 군사 훈련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2중으로 쌓여있는 여리고 성을 정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인간의 눈으로 상황을 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주인>이 될 것을 알고는, 두 정탐꾼들을 선대하여, 숨겨주었습니다. 이런 게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현재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바라보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합이 이런 신앙으로 나아오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요? 10절을 보십니다. 우리가 들었음이라라고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는데, 라합은 들은 말씀을 마음에 굳게 붙잡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을 어떻게 들으십니까? 남들은 은혜 받았다고 하는데, 내 마음은 냉랭하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놓친 까닭은 아닐까요?

 

라합이 두 정탐꾼을 숨겨준 <또 하나의 이유>, 12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보면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라합이 두 정탐꾼들을 목숨 걸고 살려준 이유는, 자신과 가족들도 그들로부터 선대를 받고 싶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합은, <장차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자신과 가족들을 살려주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구원의 증표를 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증표!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생명을 보장받는 구원의 증표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구원의 증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라합의 이러한 요구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비록 우리가 험한 세상 나그네 길을 갈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는 <구원의 증표>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안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육체적이고, 환경적이고 상황적인 면에서의 구원도 그렇지만, 영혼 구원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아무리 잘 살았을지라도, 영혼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 인생은 결국에는 zero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 8:36절에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반드시 영육간에 구원을 얻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원의 증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라합도, 두 정탐꾼을 살려준 후에, 그들에게 나도 살고 싶고, 가족들도 살리고 싶으니 <구원의 증표>를 내라고 한 것입니다.

 

자 그런데, 라합이 <구원의 증표>를 요구하자, 두 정탐꾼은 무슨 말을 합니까? 14절을 보면,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라고 합니다.

 

일단은 정탐 사건을 누구에게든지 누설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일까요? 만약에 그 사실을 누설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변하여 배반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여리고 성 함락작전에 차질이 생기게 되고, 그러면 두 정탐꾼도 라합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정탐꾼들은, 우선 라합에게 정탐 사실을 누설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그렇게 하면 자신들도 여리고 성을 멸할 때에 라합을 예우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라합도, 두 정탐꾼의 말에 동의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후, 두 정탐꾼들은 여리고 성을 탈출하는데, 15절에서 보는 것처럼 라합은, 두 정탐꾼들을 창문으로 해서 줄로 달아내려 도망치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은 무너져버렸기에, 그 성벽의 두께가 얼마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므깃도에 있는 성벽을 보니 그 폭이 5m정도였으며, 실제로 그 위에 집을 지었던 흔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세운 사마리아 성은 벽 두께가 9m 정도 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리고 성은, 므깃도나 사마리아 성 보다는 훨씬 큰 성이었고, 2중 성이었기에, 성벽 두께는 더 넓었을 것이므로, 그 성벽 위에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을 것이고, 라합도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라합이, 창문으로 두 정탐꾼들을 달아 내리면서, 16절에서 보는 것처럼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두 정탐꾼은 17절에서 보는 것처럼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라고 합니다. 정탐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고 다시 다짐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후, 18절에서는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라고 하면서 <구원의 증표>를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친족들을 구원의 증표가 있는 곳으로 모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19절 상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라고 합니다. <구원의 증표>가 있는 곳에 머물러야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21절에서 보는 것처럼, 라합은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라고 하고는, 그들을 보낸 후, <붉은 줄을 창문에 매었다>고 합니다. 구원의 증표를 주는 자의 말대로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6:2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라고 합니다. 여리고 성은 망하였지만, 라합과 그의 일가는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증표>가 있었기 때문이며, 모두가 그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증표를 이야기 할 때, 노아 홍수 이이기도 중요한 예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를 대비하여 <구원의 증표>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많은 인부들을 고용하여 방주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 7:11-12절에서 보는 것처럼, 노아가 600세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40 주야로 비가 내리게 하시고, 땅에서 물이 솟아오르게 하셔서, 온 땅에 물이 가득하였기에, <구원의 증표>로 주신 방주에 승선하였던 노아의 8식구 외에는 모두 멸망하였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도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주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 일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재앙이었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시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증표>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출 12:7절에서 보는 것처럼 <양의 피>를 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12:13절에서 보는 것처럼, 그 피가 표적이 되어, 죽음의 천사가 애굽 땅을 칠 때에, 문에 피가 발린 집은 그냥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양을 문턱에서 잡아 <구원의 증표><양의 피>를 문에 발랐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에게는 이 증표가 없었습니다. 까닭에 출애굽 전날 밤, 온 애굽은 장자를 잃은 슬픔으로 애곡을 했으나 <구원의 증표>를 가졌던 이스라엘은 오히려 출애굽의 소망으로 충만했습니다.

 

구원의 증표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이 증표만 있으면 안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이 증표가 있습니까?

1. 라합은 붉은 줄을 창에 매닮으로 구원의 증표를 가졌습니다.

2. 노아는 홍수 심판이 있을 때 방주라는 구원의 증표로 구원받았습니다.

3. 출애굽 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름으로 구원의 증표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구원의 증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이 깨어지기 쉬운 존재이며, 잠시 끼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언젠가는 죽음을 맞아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은 언젠가는 종말을 고할 것이기에, 때가 되면, 여리고 성이 무너졌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증표> 있다면, 어떤 일을 만나도 아무 염려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구원의 증표>는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식입니까? 권세입니까? 이런 것들은, 세상살이에 유용한 것들이기는 합니다만, <구원의 증표> 될 수 없습니다.

 

타이타닉 영화나 비디오를 다 보셨을 것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배가 침몰되고 있는 중에도 자신들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에 소망을 심어주고자 차분히 찬송가를 연주하던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돈을 받고 일을 봐 주기로 했던 사람이, 돈을 뿌리치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영상을 봅니다. , 그 영상에서는 PPT 파일에서 보는 것처럼 "Your money can't save you anymore than it can save me." 라고 하는데, 돈이 너의 생명도 나의 생명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따로 있습니다. 특히 영혼 구원이 필요한 우리는, 라합이 창문에 매단 붉은 줄과, 출애굽 시에 문에 바른 양의 피를 주목해야 합니다. 왜 붉은 줄이고, 왜 양의 피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증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확실히 붙잡아야 할 <구원의 증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지키던 간수가 자결을 하려다가 묻기를, 16:30절에서 보는 것처럼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고 하자, 바울은 행 16:31절에서 보는 것처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구원의 증표>가 있습니까? 어디에 간직하셨습니까? 라합은 <구원의 증표>인 붉은 줄을 정탐꾼들이 보도록 창에다 매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증표>로 가졌다면, 그것을 우리의 마음의 창에 달아야 합니다. 가정의 창에, 직장의 창에, 교회의 창에 달아야겠습니다.

 

그래서 환난 날을 대비하여, 나는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는 새 역사를 창출해 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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