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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6장 1-7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24.04.28)
김태규 2024-04-28 추천 0 댓글 0 조회 63
61-7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 1, 595(372) 312(341)

 

신약시대에 최초로 세워졌던 예루살렘교회는 날이 갈수록 부흥해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복음을 반대하는 세력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부흥하게 하는 사도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계속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본문 1절 상반절에서는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결신자의 수를 카운트 하면서, 3천명, 5천명이라고 하였으나,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믿음 안으로 들어왔기에, 숫자를 카운트하지 않고, 그냥 더 많아졌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다 보니, 문제점도 하나 둘 늘어 갔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자리가 협소하였을 것이기에, 건물을 더 늘리거나, 장소를 더 넓히는 작업을 했을 것이고,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해야 했기에, 교사들도 많이 모집을 해야 했을 것이고, 기타 많은 일거리들이 새로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고아와 과부들을 잘 보살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교회는 규모가 커질수록, 이 일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잘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최선을 다하여 성경에서 가르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1절 하반절을 보면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될수록 성경에서 행하라고 한 일, 즉 힘들게 사는 과부들을 위해서 구제하는 일에도 더욱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 일이 순조롭지 못하여 원망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씩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는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여, 칭찬 보다는 원망을 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교회는, 과부를 돕는 좋은 일을 하고도 원망을 들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용상으로 보아, 예루살렘 교회의 주된 성도들은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중에서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교회 운영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우선시하였기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불이익을 당하는 문제가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니 원망하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런 일은, 한참 부흥해 가는 예루살렘 교회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왜입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공동체라도, 다투고 싸우면 곧장 큰 상처를 입게 되고, 그래서 와해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교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잘 성장하던 교회가 어느 날 초라한 교회로 전락해버리고, 어떤 교회는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싸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교회가 분쟁하고 싸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가지고 막 공격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서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의 미혹에 이끌려서, <행동으로, 말로>, 교회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가 박살이 나게 만듭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 교회가 그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긴급회의를 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후, 2절에서 보는 것처럼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당시 구제를 비롯한 모든 일을, 사도들이 직접 담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은 많은데, 사람은 열둘밖에 안 되니,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았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리에 소홀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사람들을 접대하는 일에 신경 쓰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니, 이제 이런 일들은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을 주도하게 하고, 자신들은 4절에서 보는 것처럼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일곱 집사를 택하여, 지금까지 자신들이 하던 <접대 일>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5절에서 보는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의 온 무리들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7,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 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후, 6절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을 사도들 앞에 세웠더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최초의 안수 집사로 세워, 교회 일을 담당하게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하였더니, 교회의 문제는 수습되고, 7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가 정리되고, 교회가 더 부흥하게 한 key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도들의 말, 3절 말씀 때문입니다. 3절을 다시 보실까요?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지를 3가지 측면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에 아름답게 쓰이는 일꾼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은, 마음과 귀를 여시고 말씀을 경청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은,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열두 사도도, 앞으로 자신들을 대신하여 구제 일에 전념해 줄 사람을 찾으면서, <너희 중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며 사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은 아니겠지요? 그 반대로, 성령께서 그 사람의 중심에 계시고, 그래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성령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까?

 

기도해야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사랑해야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전 12:3절에서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믿음에 굳게 서려면, 늘 성령께 사로잡혀 있어야 하고,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에, 내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고,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뜻과는 별개의 삶을 살게 되고, 그러면서 죄를 짓고 살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일에 합당하게 쓰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두 사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전도회 회원 여러분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성령 충만한 분들입니까? <성령 충만한 자들은> 내 감정, 기분,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져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고 살면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내 자아는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힘쓰고, 애쓰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살기를 좋아 하십니까? 내 기분과 감정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합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 중심에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살아가시려고 애쓰십니까?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주님의 일꾼으로 아름답게 쓰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은 지혜가 충만한 자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 즉 헬라어로 <소피아>라고 하는 말은, 지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지식은 책을 보고 공부하고, 연구하여 얻을 수 있으나, 지혜는 그렇게 얻을 수 없습니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말하는데, 3:17절을 보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라고 합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위로부터 나지 않은 지혜도 있다고 합니다. 3:15절을 보면,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합니다. 그런 지혜는 어떤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까? 3:14절에서 보는 것처럼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며, 자랑하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삶>의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9:10절에서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라고 합니다. 여기 <여호와를 경외한다>라는 말은 무섭고 공포심에 눌려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대하심과 영화로우심>에 가히 견줄 수 없는 자신을 조심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백성이 왕 앞에서 조심하는 그런 자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자세를 취하면, 그 사람은 경거망동 할 수 없고, 조급하게 행동할 수 없고, 깊이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에, 바르게 행할 수 있고,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혜는, 언제나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성령으로 인하여 얻는 지혜>이기 때문에, 사도들은 <너희 중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를 택하라>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자가 지혜도 충만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너는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지혜롭게 살아가는가?> 라고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서 문제가 있지 않은가를 점검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지혜롭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약 1:5절에서 이렇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말씀을 붙잡으시고 <지혜를 얻기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왜 입니까? 지혜롭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로 충만한 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아름답게 쓰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너희 가운데서 지혜가 충만한 자를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자는 칭찬 듣는 자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칭찬을 듣는다>라는 말은, 성도가 성령 충만하고 지혜가 있어, 교회에서 성도들로부터 <공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을 의미입니다. 이런 평판은, 목사에게도, 장로에게도, 집사에게도, 남녀 전도회원에게도, 청년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어떨 때 좋은 평판을 얻게 될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교회의 일에 충성하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덕을 베푸는 것을 보일 때 가능합니다. 지식도 많고, 일도 유능하게 잘하는데, 독선적이며 이기적이요, 덕이 없는 성도는 칭찬듣는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들은 초대교회 7집사를 세울 때, <칭찬 받는 자를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61-7절 말씀을 함께 펼치고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사도들은 7집사를 세우면서,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 힘 있는 사람, 잘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는 자들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를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자질을 갖추어야겠습니다.

 

바라기는, 한 번 사는 생이기에, 하나님 앞에 잘 쓰임 받음으로,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돌리고, 교회가 부흥되게 하는 영향력을 끼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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