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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장 8-14 성탄을 기뻐하십시오(24.12.15)
김태규 2024-12-15 추천 0 댓글 0 조회 43

28-14 성탄을 기뻐하십시오. 88, 104(104) 115(115)

 

우리는 성탄절을 10일 정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사실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며,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눅 2:8-14절을 함께 펼쳤는데, 우리가 펼친 본문은, 천사장 가브리엘이 목자들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사실을 알리면서 기뻐하라고 한 사실과, 왜 그래야 하는지를 가르치면서, 자신이 이르는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것이고, 이것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한 사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 허다한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본문 말씀을 중심하여 <성탄을 기뻐하십시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성탄의 은혜와 기쁨을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라고 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 중에서, 목자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자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며, 목자들이 하는 일도 유대인의 규례에 의하면 부정한 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무척이나 고달팠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밤에 들녘에서 양 떼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버려진 사람으로 취급을 당할지라도,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성실하지 않았다면, 그 추운 밤에, 남들은 모두 편히 잠을 자는 그 밤에, 들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있었겠습니까? 그냥 대강 해 놓고 밤에는 집에 들어와서 자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밤에도 밖에서 양 떼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9절에서 보는 것처럼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다고 합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던 비천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은총은,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아니, 비록 비천하지만, 그래서 무시당하고 살지만, 성실히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은총을 입혀주심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의 천사를 그들에게 먼저 보내셔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알리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베들레헴 들녘에서 열심히 양을 치고 있을 때, 선지자 사무엘의 부름을 받고,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엘리사도 밭을 갈다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아,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가진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할 수 있는대로 성실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실히 양을 치던 그들에게 주의 천사의 임재로 인하여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주의 영광>을 보고는 <크게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에, 무서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이 무서워하였다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부탁하기를, 20:19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는 직접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를 통하여 말씀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8:27절을 보면,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의 환상을 받고는 <지쳐서 여러 날 앓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들도 주의 천사를 만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에,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주의 천사는 위로의 말씀을 줍니다. 10절 상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무서워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눅 1:13절에서도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무서워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1:30절에서는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도 <무서워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천사는 왜 목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주의 천사가 임한 것은 심판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눅 2:10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합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으니,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기쁨의 <좋은 소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헬라어 원어로는 유앙겔리온(εαγγέλιον) 이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 복음이라는 용어는, 구약성경에서는 승리의 소식, 혹은 출생의 소식을 전할 때 사용된 <빠솨르>라는 것인데, 예를 들면, 삼상 31:9절에서 보는 것처럼 블레셋이 사울을 죽이고 승리를 전하는 소식을 <빠솨르>라고 하였고, 20:15절에서 보는 것처럼 아버지에게 아들의 출생을 알리는 소식이 <빠솨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40:9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의로움과 구원하는 능력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에도 역시 <빠솨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52:7절에서 보는 것처럼,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야가 온다는 소식을 전할 때에도 <빠솨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요약하는 단어로 표현되었습니다. 따라서 막 1:1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합니다. 고전 15:1절에서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라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말하는 말씀이 신약성경에는 무려 72회나 나타나는데, 그중에서 54회가 바울 서신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복음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복음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며, 복음의 계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온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딤후 2:8절에서는 <나의 복음>이라는 말이 있고, 고후 4:3절에서는 <우리의 복음>이란 말도 있는데, <나의 복음>이니, <우리의 복음>이라는 말은, <내가 믿고,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메시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으로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나의 복음>, <우리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기에, 목자들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두려워하고 있는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세상에서 얻어지고, 가지고, 누리는 일반적인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소식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는 기뻐하다가, 곧 이어서 우는 자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영원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복음으로 인하여 누리는 기쁨 또한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런 변하지 않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본문 11절에서 보는 것처럼, 구주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구주란 <구세주>를 말하며, 그분은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10:45절을 인용한다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드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으니,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연히 된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1:1-2절 상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본문 10절을 다시 보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라고 합니다. 그 대상이<온 백성>이며, <너희>라고 합니다. 11절에서도 <너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주로 오신 소식을 듣고 기뻐해야 할 자들은, 국적이나, 인종이나, 지위나, 재산이나, 성별이나, 학벌에 관계없음을 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이면 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이란, NIV에서는 그의 호의, 또는 은총을 입은 사람들”(men on whom his favor rests)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기뻐할 수 있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인데, 이 평화는 죄와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평이며, 반목과 질시로 벽을 쌓고 살아가는 인간들 관계 속에서의 평화이며, 염려와 격심한 감정의 혼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기뻐하며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이, 또 다른 측면에서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이 말씀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하나는 구주께서 그냥 성인으로 온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로 오셔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바로 <표적>, the sign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석가는 왕가에서 왕자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공자도 상류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과 동등이지만, 마구간에서 나셔서 구유, 즉 여물통에 뉘었다고 합니다. 이게 구주로 오신 사실의 sign이요, 이것이 기독교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기로 오셔서, 구유에 뉘인 예수 그리스도가 기뻐하고 평화를 누릴 표적이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 보아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없는 인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게 하시고, 그분과 두려움 없이 교제를 누리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sign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느 누구나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눅 1:7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이제 여러분들은 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 가브리엘은, 양치던 목자들에게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렇게 구주 메시야가 나신 소식을 가져왔고, 표적도 보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 도전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이 성탄의 계절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으로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로를 바라보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의 좋은 소식, 즉 복음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들 만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여러분들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2000년 전에 다윗의 동네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사실을 믿는 분들입니까?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신 사실을 믿는 분들입니까?

 

그러시다면, 슬픈 일이 있어도, 마음 아픈 일이 있어도, 비천한 처지에 있어도, 궁핍한 중에 있어도, 내 인생의 앞길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불안할지라도,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성탄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는 자들 아닙니까? 목자들은 이런 성탄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계절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도 목자들이 누렸던 기쁨, 목자들이 누렸던 평화를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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