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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0장 45절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24.12.22)
김태규 2024-12-22 추천 0 댓글 0 조회 47

1045절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122, 126, 125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합시다.

 

1640년경에 창시된 영국 퀘이커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의 세속화와 오염을 염려하여 <크리스마스 축제 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어떤 사람이 일기장에 쓰기를, 보시는 것처럼 “1224... 술 마시고 집에 와 잤다.” “1225... 교회 갔다가 오면서 술 마시고 집에 와 잤다.”고 썼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일기에서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술을 마셨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람이 성탄의 정신을 모르고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성탄의 정신을 바로 알고 있었다면, 적어도 그의 성탄절 일기장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하여 몇 마디는 남길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내용은 아무것도 없고, 그냥 교회 갔다가 오면서 술 마시고 와서 잤다고 썼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성탄절을 기쁘고 즐겁게 지내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오늘날은 그때와는 다를까요? 아마도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성탄절 노래 몇 곡은 부를 줄 알지만, 성탄의 정신을 바로 알지 못하기에, 세속적인 방법으로 성탄절을 즐기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죤 데이빗이라는 분은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화면을 보실까요? “12월에는 두 개의 크리스마스가 있는데, 하나는 X-mas이고, 다른 하나는 Christmas이다.” 무슨 의미일까요? 전에는 X-masChristmas는 같은 의미였는데, 이제 X-mas<미지수를 의미하는 X> mas가 되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흥청거리며 기분을 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친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상고하면서, 하나님께서 성탄절을 주신 의미를 깊이 깨닫고, 성탄의 정신을 살리며 살아가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보실까요? 1045절입니다. 함께 읽어 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데, 먼저 유의할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인자>, <인간의 아들>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1을 보실까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그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그 분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 1: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빌 2:6-7절에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성육신(Incarnation)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자>,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아들로 오셨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대로,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기에, 본문 말씀을 다시 보십니다. 10: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에는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두 가지가 설명되는데, 그 첫째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며, 저와 여러분들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섬김을 받으러 오셨다고 해도, 그 누구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너무나 손해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누구나 더 높아지려고 하지, 낮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아 홍수 후에 번성한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으려고 한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11:4절을 보실까요?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높아져서 하늘에 닿게 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비어, 육신을 입으시고 종의 형체로 오셨습니다.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일생 동안 가난한 자, 병든 자, 천한 자,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요 13:15절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본을 보이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은 그것뿐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섬김이란 무엇입니까? ‘섬김이란 헬라어로 디아코니아,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섬기셨고, 제자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렇게 섬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섬겨야 할 일도 많고, 그 대상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섬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주님을 따라 섬기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고, 섬김을 받는 일에는 익숙한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김을 받는 자가 행복한 줄로 착각하고는, 뒷짐 지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섬기는 곳에 행복이 있고, 섬기는 자에게 행복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2:9-10절 말씀을 보실까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낮아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시면서 섬기셨더니, 그것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높아지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게 되셨다고 합니다.

 

영국 속담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루 동안 행복 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 동안 행복 하려거든 여행을 하라. 한 달 동안 행복 하려거든 집을 사라. 일 년 동안 행복 하려거든 결혼을 하라. 일평생 행복 하려거든 이웃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섬김이 행복의 가장 아름다운 비결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섬길 때, 사랑과 우정이 더해갑니다. 교회를 섬길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이상하게 믿음으로 섬길 때는 힘들지도 않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섬기고, 억지로 섬기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눈치 보다가,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달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섬기면,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은혜와 믿음이 더해지고, 사랑과 우정이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의 섬김을 봅니다. 그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섬겼습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데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천사를 섬겼고,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그 섬긴 일로 인하여 멸망의 도성에서 조카 롯의 가족들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섬김에는 생명을 구하는 유익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섬김으로 죄인이 구원받은 것처럼, 나의 섬김도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기회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은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는 참으로 복 받은 자인데, 13:2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이르시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주님의 섬김을 본받아, 섬기는 삶을 사십시다. 내 기분에 맞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종으로 섬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자세, 그런 모습으로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합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의 계절에 성탄의 정신을 배워, 잘 섬기는 길로 나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그가 오신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합니다. <대속물>이란 노예가 자유를 누리도록 하려고 대가를 지불하는 속전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로 이렇게 자기 몸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속전의 대가를 치르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을 의인 되게 하시려고 속전을 치르시는 방법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에서의 구원의 역사는, 성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섬겨주시고, 대속물이 되셔서 구속해주심으로,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요, 소망을 가지고 새 삶의 길로 들어선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절을 맞으면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남은 생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살겠다는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영국 사람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날에 술 몇 잔 마시고 감격하는 그런 성탄절을 맞으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는데, 어찌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바로 알고,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섬김의 삶을 사십시다. 더욱 낮아져서 섬기십시다. 그리고 나를 억만 가지 죄악에서 대속해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면서 살아가십시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하여, 이 성탄의 계절에, 더 큰 은혜의 바다로 헤엄쳐 나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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