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장 9-10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1 549(431) 425(217)
우리가 가진 찬송가 549장에는 이런 가사가 실려 있습니다. 1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 찬송 시는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독일의 벤자민 슈몰크(B. Schmolck) 목사님께서 작사하셨습니다. 그 경위는 이렇습니다. 1704년 어느 날,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교우들을 심방하고 돌아와 보니, 집이 불타 잿더미가 되었고, 두 아들도 불타서 죽어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슈몰크 목사님은 한동안 정신을 잃었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기도를 상기하며, “오! 주님,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이 찬송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살전 4: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라고 합니다. 살전 5:16-18절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합니다. 벧전 3:17절에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룩해지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치면 무한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여러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 <네페쉬, 파랄, 마, 페, 아마트, 하페쯔, 다바르, 레우트, 레브, 라쫀, 에짜, 마하솨바> 등의 단어가 사용되었고, 신약에서는 <델레마, 불로마이, 불레, 델로, 프로데시스> 등의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단어들을 한글로 풀어보면, 뜻, 마음, 생각, 의도, 소원, 의향, 계획, 방법, 제안, 열망, 사랑, 기쁨, 선호, 의미, 결정, 선택, 유지, 조언, 선호, 유념, 열거, 결의, 증명, 목적, 충고, 고안, 즐김, 좋아함, 모사, 방책, 의지, 만족, 은총, 관심, 요구, 말, 선언, 중재, 간구 등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차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서 살고, 하나님의 경고와 충고를 들으며 살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실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면, 얼마든지 <즐겁게, 기꺼이, 그리고 온전하게>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친 본문 말씀을 통하여 기도하면서 그 뜻을 이루어 가라고 교훈하며 도전을 주시는데, 본문 9절과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볼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절 말씀이 중요한데,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은, 현재 하늘에서는 완성되었으나, 이 땅에서는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모든 일에 대하여 정확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를 정해놓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저 은하계에 있는 해, 달, 별, 행성들의 움직임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도 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 37:23절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내 인생이 내 뜻대로 진행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벽한 Master Plan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내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삶이 되도록,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수시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슈몰크 목사님께서 고백한 찬송 시도 수시로 읊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라고요.
그러면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뜻을 이루어 가시든지 간에, 그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욥처럼 말입니다. 욥 1:20절을 보실까요?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나온 배경은 이렇습니다. 욥은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그러니까 1000 마리이지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두었던,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였습니다.
그런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고 하며, 자녀들이 성결케 살도록 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리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도록 하기에 힘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바 사람이 급습하여 밭을 가는 소와 풀을 뜯는 소를 빼앗고, 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 양과 양치기를 살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사람들이 약대를 빼앗아 가고, 급기야는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을 때, 대풍이 몰아쳐서 집이 무너짐으로 열 자녀 모두가 죽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연이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한두 가지는 당할 수 있으나, 이런 일이 거듭거듭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욥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며, 망연자실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욥은 어떤 자세를 가졌습니까?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고 합니다. 그 비참한 현실 앞에서,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봅니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우리가 복을 받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우리가 평안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비록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고, 아픈 일이 있고, 통곡할 일이 생겨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 엄청난 재앙을 당한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고백합니까? 21절을 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가타부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욥을 두고 22절에서는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라고 합니다. 이를 직역하면, <나쁜 행위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는 특별히 도덕적 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욥은 그 엄청난 재앙 가운데서도, 도덕적으로 책잡힐 만한 부끄럽고 파렴치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욥은 하나님의 뜻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욥의 자세를 본받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면서, 그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세 베네딕트 수도회의 어느 수녀가 매일 아침에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반복하여 드리고 있던 어느 날, 주님께서 환상을 보이시는데, 오른손에는 건강을 쥐고, 왼손에는 질병을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내 딸아, 네가 원하는 것을 택하라> 그러자 이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 주여!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녀에게도 이런 마음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원대로라면 <건강>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녀는, 자기의 소원을 내려놓았습니다. <병들게 하시든지, 건강을 주시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면서, 주님이 뜻하시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25년 한 해를 살면서,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표어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마 12:50절을 보십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인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마 7:21절에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요일 5:14절을 보십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그렇습니다. 너무나 많은 기도 제목을 가진 우리이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 반드시 응답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일 2:17절을 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영생할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행 13:2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았기에,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고,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으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려면,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았기에, 스데반 집사님은 그런 고결한 생을 살다가 간 다윗을 한 마디로 평가하기를, 행 13:36절에서 보는 것처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삶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인생관을 이렇게 확고하게 표명하십니다. 요 6:38절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히 10: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 완전하신 뜻,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이 있음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거리낌이나, 죄송한 마음이나, 불편한 마음이나,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무슨 일을 놓고,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아셔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더 좋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잠깐 어렵다고, 지금 뭔가를 놓쳤다고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고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것이 은혜였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 요즘 여러분들에게 어떤 뜻밖의 일이 생겼나요? 그것은 재수가 없어서인가요? 운이 나빠서인가요? 누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나요? 운명 탓, 환경 탓, 시대나 정국 탓, 사람 탓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복되신 섭리와 크신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좋으신 하나님께서 선하신 결과를 보여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슈몰크 목사님처럼,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또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면서, 분별력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경주를 아름답게 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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