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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2장 1-2 세상에서 승리하는 법(25.03.23)
김태규 2025-03-23 추천 0 댓글 0 조회 58

삼상221-2 세상에서 승리하는 법/ 88 357(397) 384(434)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도는 한편으로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내세를 지향하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나라와는 전혀 속성이 다른, <온갖 죄악과 유혹, 온갖 불의와 불법>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면서, 복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야 하기에, 이렇게 이중 구조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의 삶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고 하여, 성도들은 세상을 염세적으로 살아서도 안 되고, 도피적으로 살아서도 안 되고, 아무렇게나 살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세상을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이 어려운 세상에서의 삶을, 곧고 바르게 살면서, 내세를 향하여 살고, 복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이김의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에 대해 말씀해 주는데, 오늘 우리는 그들 중에서, 한 생애를 가장 성공적으로 살았던 다윗의 삶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의 삶을 거울삼아, 이 험한 세상, 유혹 많은 이 세상, 힘든 이 세상을 이기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역사적으로 순탄치 않은 시대에 태어나, 온갖 환난과 고초를 겪으며 살았으나, 결국은 인생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생애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가에 대해서는, 사무엘상 18장에서 31장까지에서 잘 말씀해 줍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본다면,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다니며, <그날, 그날을 사느냐 죽느냐>하는 절박한 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지는 모든 짐을 잘 감당하였기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후세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메시야의 조상이 되어, 성경에 길이 남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온갖 환란과 고초를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을까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지만, 오늘 저는 두 가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는, 다윗이 온갖 환란과 고통을 극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하였는가를, 23편에서 확인해 봅니다.

 

1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그리고 2절에서는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는, 아주 목가적인 시풍으로, 고요하고 평온함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읊조리는 다윗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을 다녀야 하는, 기가 막히는 환란과 고통과 굶주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인생의 목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펼쳐주실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이 시를 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 자신의 모든 삶을 맡겨버리는 믿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찬송가 384장을 계속 불러보시기를 바랍니다. 1절만 소개해 드립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이런 믿음의 고백이 있는 사람은, 인생을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을 펼치면, 거기에는 많은 분들이 소개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세상을 승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38절에서는 비록 그들이 환란과 핍박을 받으며,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며 살았으나, 믿음으로 살았기에,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도록 세상을 다 이겨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육체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이 아닌, <믿음>입니다. 그래서 요일 5:4절에서도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을 신실히 의지함으로 가질 수 있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음으로써 가질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함으로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굳게 서서, 아무리 험한 세상도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윗이 이 세상에서 승리한 비결 한 가지만 더 살핀다면, 그것은 환경이나 학벌이나 재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는 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 우리가 펼친 본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다윗이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민심을 얻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윗은, 날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로부터 더욱 민심을 얻었는데, 원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딸 미갈로부터도 인심을 얻고, 사랑받고, 존경받고, 보호받았으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제사장 아히멜렉은, 죽음을 각오하고 다윗을 옹호하다가 순교하였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충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심을 얻을 수 있도록 했을까요? 그 해답은 <관용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관용이란 무엇입니까? 상대방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면서 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관용이란 사랑의 정신이며, 보편적으로 말하면 관용이란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관용을 말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시류에 편승해서 사람들에게 인심이나 얻어서 재빨리 출세 가도를 달리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대로 상대방을 포용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그가 바르게 가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실수도 덮어주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관용을 베푼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절을 다시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라고 합니다.

 

다윗에게 온 400명은 거의가 빚지고 도망 온 사람들, 마음에 원통함을 품은 사람들, 정부에 대해, 이웃에 대해, 일가친척에 대해 마음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었으니, 인간적으로 본다면 다루기 힘들고 골치 아픈 사람들이었을 것이지만, 다윗은 그들을 관용으로 다 포옹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에게는 친구와 돕는 사람들이 많고, 이웃이 많이 따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링컨은 <적을 파괴하는 최고의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런 고백은 자신의 경험담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정적 스탠톤(Stanton)이 있었습니다. 스탠톤은 기회만 주어지면, 링컨에게 통렬한 비난을 쏟아부어 링컨을 당황하게 만들었기에, 링컨에게는 스탠톤에 대한 미움이 머릿속까지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스텐톤을 국무장관에 임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측근들이 각하, 스탠톤이 각하에 대해서 했던 온갖 추악한 말들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는 각하의 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장관에 임명하면 각하께서 수행하는 정책을 방해하는 데 힘쓸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을 임명하는 것을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 저도 스탠톤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가 나에 대해서 말했던 끔직한 말들을 전부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를 생각한다면, 그가 가장 적임자입니다.” 라고 하면서 스탠톤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스탠톤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국가와 대통령을 위하여 엄청난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링컨이 암살당하자, 그의 시신 앞에 서서 이렇게 외치며 오열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 간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우리 가슴 속에 오래 살아있을 것입니다...”라고요. 만약 링컨이 스탠톤을 똑 같이 미워했다면, 그는 무덤에서도 적이 되었을 것이지만, 링컨이 가진 온유의 힘으로 적을 아름다운 친구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관용을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윗이 어떻게 관용을 베풀 수 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관용의 성품을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관용의 사람이 된 비결은, 삼상 16:13절에 있습니다. 보실까요?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여기 감동이라는 것은, 마치 파도가 세차게 밀려와서 모든 것을 훑어가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여호와의 영이 다윗을 세차게 휘어잡음으로, 다윗은 자기 의지대로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대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에 휘어잡혀 살 때, 온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온유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 스스로 증거하셨습니다. 11:29절을 보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온유한 마음으로 사셨는지는, 26:20절 이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임을 아셨기에,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21절에서 보는 것처럼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서로 접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다도 그렇게 물었는데, 그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말 하였도다라고 유다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어야 합니까? 이제는 유다를 쫓아내어야 하지 않습니까? 스승을 팔고, 주님을 팔 유다이기에,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가만두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기를 팔아넘기려는 가롯 유다에게, 13:26절에서 보는 것처럼 빵을 주시면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빵을 먹는 3-4분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의 관용이 돋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저주하던 베드로에게까지 관용의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음식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부르셔서 먹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조롱하며 침을 뱉으며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사람들을 향하여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면서, 관용을 베푸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조금만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한 치의 용서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바른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너그러운 말을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바른말만 가지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른말을 해야 변화가 있지, 뾰족한 사람이 자꾸 바른말만 하면 인심이 다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말을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관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이런 관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몰려들었을 때, 다윗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여러분, 관용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마 5:5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온유한 자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 잃어버릴 것 같은데, 오히려 주님은 온유한 자, 관용하는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는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관용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 관용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 예수님을 본받아 살면서 관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것이고, 그들과 함께 승리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게 세상을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는 관용으로 세상을 얻었지만, 나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상을 얻으려다가 다 잃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명제입니다. 그런데 내세를 지향하면서, 이 세상에서도 사명자로 살아야 하는, <양면성의 삶>에서 승리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이 순순히 대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살고, 사람들의 민심을 얻는 관용과 온유로 살면, 성도는 틀림없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쭈어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다윗처럼 믿음으로 삽니까? 지금 여러분들께는 관용이 있습니까? 믿음의 분량이 커지고, 무게가 무거울수록, 그리고 관용으로 인하여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승리의 고지에 가까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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