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1장 8-14 변하여 새사람 되었으니 1 289(208) 316
오늘 우리는 몬 1:8-12절 말씀을 함께 펼쳤는데,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구하면서 왜 그렇게 하는지를 알리고 있는데, 저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변하여 새 사람 되었으니”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교훈과 도전을 받기를 원합니다.
먼저 8-10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절한 부탁을 하는 것인데, 이런 부탁이 있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열심히 전도하고 있을 때, 골로새에 살던 에바브라와 빌레몬이 에베소에 왔다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골로새로 돌아가,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를 세운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주인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고, 예배가 드려지는 데도, 주인이 믿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이 밝히지 않으나, 전해지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인이 종에게 매우 가혹하였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저런 고약한 주인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죽어도 믿지 않겠다. 저런 주인이 가는 천국이라면 나는 절대로 거기에 가지 않겠다.”라고 생각하고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것이리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경우입니다. 주인이 너무 좋은 사람이었으나, 오네시모는 성질이 매우 고약하여,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주 말썽을 부렸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하여도,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끝내 믿음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에 방점을 찍어 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큰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인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빌레몬의 집에서 종살이하던 오네시모가, 골로새에서 로마로 도망을 쳤습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골로새에서 로마까지는 어느 길로 가든지 간에, 수천 km가 넘는 먼 길이었기에, 오네시모가 로마로 도망을 쳤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오네시모가 로마로 도망을 친 이유는, 당시 로마는 인구도 많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였기에, 도망친 노예들이 숨어 살기에 좋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도, 골로새에서 멀리 떨어진 로마로 도주하여 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로마까지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경비가 필요하였기에, 아마도 빌레몬의 집에서 많은 재물을 훔쳐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8절에서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네시모가 로마로 간들,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빈털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만났는지, 아니면 주인으로부터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터였기에, 의도적으로 수소문하여 만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울이 로마에서 갇혀 있을 때,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난 후, 그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하여 말하기를, 10절에서 보는 것처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면서, 그를 위하여 빌레몬에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과 오네시모는, 육신적으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입니다. 그럼에도 “낳은 아들”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바울은 감옥에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음의 아들>이 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모에게 바울은, “믿음의 아버지”였고,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믿음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 1: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러시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힘주어 외치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된 오네시모에게는, 삶에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는,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후,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로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의 위력>을 보게 됩니다. 복음은, 쓸모없는 사람도 유익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로 미루어 보아,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집에 있을 때는, 늘 도망칠 궁리만 하는, 게으르고 쓸모없는 노예였던 것 같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용한 자>라는 의미인데, 그가 바울을 만나 믿음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자기 이름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무익한 자로 살았는데, 그가 바울을 통해 복음을 알고 난 후로는, 그의 이름대로, 바울뿐만 아니라 빌레몬에게도 유익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쓸모없는 사람조차도 유익한 자로 바꾸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자 어거스틴도, 복음으로 인해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어거스틴은 30세가 되도록 마니교라는 이단 사상을 따랐으며, 생활면에서도 방탕한 삶을 살았던, 무익한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롬 13:13-14절에서 보는 것처럼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을 깨닫고는, 위대한 신학자요 저술가로서, 지금까지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한국 초대 교회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김익두 목사님도 복음으로 인해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양반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과거 시험에 몇 번 낙방하고는, 동네 깡패가 되었습니다. 힘이 얼마나 장사였든지, 주막집 기둥을 떼 내어, 집을 무너뜨리기도 했고, 온갖 기물을 파괴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쓸모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스왈른((Willaim L. Swallen)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후, 그야말로 순한 양처럼 변했습니다. 그러자 과거에 그로부터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 그가 예수를 믿고 변했다는 말을 듣고는 찾아와서, 곰방대로 머리를 내리치고, 뺨을 때리고, 침을 뱉기도 했지만, 그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김익두는 정말로 변했구나, 변했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펼친 빌레몬서를 쓴 사도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도 본래는 교회틀 핍박하던 쓸모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딤전 1:13절 상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15절에서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복음을 알기 전에는 무익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알고 난 뒤로는, 고전 15:10절 중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을 구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심지어 살인마라 할지라도 변화될 줄로 믿고,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믿기만 하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믿은 후에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산다면, 그래서 여전히 무익한 삶을 산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복음을 영접한 자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복음을 믿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면, 그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적이요, 마귀적인 사람이었을지라도,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이었을지라도, 예수님을 믿은 후로는, 영적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에서 상을 받을 자들로 신분이 변화되었기에, 우리의 삶도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예배당에 들어올 때와 예배하고 돌아갈 때도 달라져야 합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또 다른 가르침을 주는데, 오네시모를 일컬어 <심복>이라고 하였습니다. 12절을 보십니다.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여기 <심복>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σπλάγχνον, 스플랑크논>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뜻은 <내장, 혹은 심장>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이런 단어가 사용된 이유는, 내장 혹은 심장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이듯이, <오네시모는, 무엇이든지 믿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이나 맡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는 신실한 종 엘리에셀이 있었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길 정도로 믿음직스러운 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얻기 전에는, 상속자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아내를 맞이하는 일도, 전적으로 그 종에게 맡겼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심복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만난 오네시모가,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되고, 그리고 <변화된 유익한 아들>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심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내장과도 같은 오네시모를, 13절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이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복음을 전하며, 온갖 시중을 들도록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인인 빌레몬의 허락 없이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보는 것처럼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짧은 부탁 속에는, 아주 중요한 담론이 담겨 있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가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는 사랑의 체험을 하도록 하며, 오네시모에게는 자유의 몸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는 기회를 얻게 하고, 바울 자신에게는 유익한 일꾼과 동역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그런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선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하여, 매우 감동적인 방법으로 이 일을 처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이 자기에게 해주어야 할 섬김의 몫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권위를 높이며, 호소하는 방식으로 빌레몬의 마음을 노크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너도, 나도, 그리고 교회도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16절에서 보는 것처럼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라고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미 오네시모를 <자신의 믿음의 아들>로 여기고 있기에, 빌레몬에게도 오네시모를 <종>으로 여기지 말고, <사랑받는 형제>로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끝이 나기에, 빌레몬이 어떻게 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빌레몬은 바울이 보낸 편지와 함께 오네시모를 맞이하면서, “이런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인데, 바울 사도가 하였다.”고 하면서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없는 것으로 생각할 테니, 바울에게로 다시 가서 그를 섬기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바울에게로 가서, 바울과 함께 평생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이 순교할 때에 함께 순교 당한 순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심복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받기 전에는 주인의 재산을 축내고 도망친 종이었습니다. 그런 사실로 미루어, 그는 주인에게 불순종하고, 나태하고 게으른 백해무익한 종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전해 듣고는, 사도 바울에게는 믿음의 아들이 되었고,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되었으며, 복음을 위하여 사는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내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합니다. 오네시모처럼 진정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무익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유익한 자로 살면서 <심복> 노릇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제가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 개인의 몫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변하여 새사람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심복으로 살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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