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30장 1-8 하늘 줄을 붙잡으라 1 488(539) 383(433)
그런데 그넷줄만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우리가 붙들고 살아가는 많은 줄이 있는데,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때로는 사람이라는 세상 줄을 붙잡기도 하고, 물질이라는 세상 줄을 붙잡기도 하고, 권력, 혹은 환경이라는 세상 줄을 붙잡기도 하는데, 이런 줄도 끊어집니다.
사람 줄이라고 하면,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님, 형님, 누나, 삼촌, 선생님 등등을 말할 것인데,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라는 세상 줄>을 붙잡는 이유는, 가장 쉽게 붙잡을 수 있는 줄이 사람 줄이고, 어떤 면에서는 가장 강한 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 27:10 상반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다” 부모라는 세상 줄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딤후 4:16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나와 함께 하였던 자들이 다 나를 버렸기에, 지금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 줄은 끊어집니다. 그래서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 아래에 X 표시를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물질이라는 세상 줄은 어떨까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물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이라는 세상 줄도 붙들기 쉽습니다. 돈이 필요하고, 먹을 양식이 필요하고, 입을 옷이 필요하고, 살 집이 필요하기에, 사람들은 그런 것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욥 1:3절을 보면, 욥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마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고 합니다. 이는 인격적으로도 가장 훌륭했을 뿐 아니라, 가장 부자였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자였던 욥이 어떻게 됩니까? 삽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스바 사람들이 몰려와서,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다 빼앗아 가버렸고, 양과 종들은, 벼락에 맞아 죽었고, 갈대아 사람들은 낙타를 다 빼앗아 가고, 종들도 죽였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사람이 붙잡기 쉬운 물질도 쉽게 끊어지는 줄임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권력은 어떻습니까? 애굽의 바로는 세상에서 제일 큰 권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권력이라는 세상 줄을 붙잡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시자, 그의 권력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환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좋은 환경이, 나중에는 지옥처럼 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줄들은, 우리가 붙잡을 줄이 아니기에,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이런 세상 줄을 우리는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모두 X 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장차 이스라엘 왕이 될 다윗은, 사울 왕의 박해로 인하여 도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멀리 블레셋까지 피신하여,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였습니다. <아기스 왕이라는 세상 줄>을 잡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가까스로 어느 정도의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여,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다윗은 블레셋 편에서 아기스를 도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잠시 세상 줄을 잡아 평안을 누리는가 했더니, 그 세상 줄이 다윗을 난감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비상 섭리를 하셔서, 도중에 아기스의 신하들로 하여금, “다윗은 전쟁에 함께 할 수 없다”고 반대하게 하셨고, 이에, 아기스도 신하들의 청을 받아들여, 다윗을 시글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본문 1절에서 보는 것처럼, 다윗이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사흘 만에 시글락으로 돌아와 보니, 시글락은 불타 있었고, 남녀와 남았던 사람들이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시글락을 불사르고, 2절에서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약탈하고, 사람들도 모두 포로로 잡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3절에서 보는 것처럼 아내와 자녀들도 다 사로잡아 가버렸기에, 다윗은 생애 중에서 <가장 처참한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멀리 이국땅으로 도피하여, 좀 편히 살아보려고 <세상 줄을 잡았으나>, 오히려 모든 것을 일시에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돈 몇 푼이라든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물건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가진 것을 몽땅 다 잃었습니다. 집도, 소유도, 함께 하던 사람들도, 심지어는 자기 처자들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다윗에게는 <세상 줄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랬을 때,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4절에서 보는 것처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들은, <세상 줄이 끊어진 암담한 현실> 앞에서,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통곡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에, 엄청난 슬픔에 잠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다윗을 보면서, 다윗에게 닥친 이러한 큰 재난의 궁극적 원인이 무엇인가를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는데, 그 원인과 이유는, 목전의 안전과 정착을 도모코자 언약의 땅 이스라엘을 떠나, 우상의 나라인 블레셋 땅으로 이주한 데 있었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상황이 좀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을 믿음과 인내로 감당하려고 하지 않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안전을 도모코자 <세상 줄을 붙잡은 다윗>의 <불신앙적 행위>로 인하여, 이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잿더미 위에 서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픔과 슬픔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엄청난 상황이 전개되었는데, 6절 상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신과 함께했던 600명의 사람들마저도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봅니까? 그렇게도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갑자기 다윗과 원수가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는 것인데, 이런 일은, 왜 갑자기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고 떠나버리는가를 보게 합니다. 왜 사람들이 가정을 등지며, 왜 사람들이 부모를 등지며, 왜 사람들이 회사를 등지며, 왜 사람들이 친구를 등지고 원수가 되어, 떠나버리는지를 보게 합니다.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혹시 아이들로부터 “나 교회 가기 싫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만재 씨가 책을 썼습니다.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교회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인데, 몇 가지만 추려보면, “각종 모임에 참석하라는 강요가 많고, 고리타분하고, 말 많은 전도사가 싫어서, 헌금이 무서워,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을 보지 못해, 교회에 쓸 만한 총각이 없어, 마음 터 높고 깊은 이야기를 할 친구가 없어” 등등, 77가지를 나열해 놓았습니다. 다 세상 줄을 잡은 사람들의 나름대로의 이야기 입니다.
어떤 40대 남자가 주일인데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이불을 둘러쓰고 눕더랍니다. 그러자 80대 노모가 이유를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 하였더니, 첫째는 주일날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은데,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둘째는 주일에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데, 하루 종일 교회에 붙들어 놓으니까, 셋째는 예배드릴 때,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어서 그런다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80대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일날 교회에 가야 할 이유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첫째, 주일 날 예배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둘째, 예배는 사람보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까. 셋째, 너는 담임 목사니까 설교하러 가야 하지 않니?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분은 목사님이신데도, 세상 줄 붙잡고 목회하시다가 보니, 목회가 너무 힘들어, 나름대로의 이유로, 주일에도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던 것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디 그 목사님만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 줄을 붙잡고 살면, 결국에는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남의 탓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둘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얼마 못 가서, 서로 상대 탓을 하면서 해어지고 방황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형 아우 하면서, 큰 집을 사서 한 집에서 의좋게 살자고 하였는데도, 얼마 못 가서 서로 상대 탓을 하면서,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 왕이 너무 괴롭히기에, 블레셋으로 가서, 아기스 왕이라는 세상 줄을 붙잡았다가,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자, 이제는 자기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사람들마저도,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럴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본문 6절 하반절 말씀을 보실까요?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예, 다윗은 세상 줄이 다 끊어져 버린 상황에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다급한 상황에 처하자, 그대로 주저앉아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여기 <하나님을 힘입었다>는 말은, 마치 사람이 옷을 입듯이, <하나님을 입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옷을 입으면, 몸은 옷 안에 있듯이, 다윗은 하나님을 입어버렸기에, 자신은 하나님께 속해버리게 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 줄이 끊어져 버렸기에, 이제는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줄을 붙잡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입니까? 세상 줄은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약한 줄이지만, 하나님의 줄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롬 8;39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줄은,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 끊을 수 없는, 질기고, 튼튼하고, 안전한 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줄만 가지신 것이 아니라. 생명줄도 가지고 계시고, 도움의 줄, 능력의 줄, 회복의 줄, 치료의 줄, 구원의 줄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줄은,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늘 줄을 붙잡기만 하면,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도, 세상 줄이 끊어져,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놓였으나,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용기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생기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힘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바라보고 의지하던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 하나님이며, 지금도 살아계시면서, 다윗에게 용기를 주고, 승리하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착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은 특별한 사람이고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특별한 사람이고, 다윗도 특별한 사람이라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는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다윗도, 바울도, 저와 여러분들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단지 그들에게 더 나은 것이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며,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우시고,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비록 세상 줄이 다 끊어지고, 사방은 완전히 막혔을지라도, 하늘 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다윗은 그렇게 일어섰습니다. 그런 후, 7절에서 보는 것처럼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아비아달이 에봇을 가져오자, 다윗은 8절에서 보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기도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나, 아마도 다윗은 세상 줄 붙잡았다가 실수한 것을 회개하면서, 자신이 죽게 된 것을 구하여 주시고, 그리고 아말렉 군데를 추격하려고 하니,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기도하며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를 좇아가면 반드시 따라잡고, 모든 것을 도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돌로 치려던 사람들의 마음이, 온유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펼치지는 못했으나,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다윗은 그들과 함께 아말렉을 추격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되찾았습니다. 회복입니다. 하늘 줄을 잡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행동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도전 드립니다. 살아가노라면, 세상 줄을 붙잡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 줄은 쉽게 끊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하늘 줄을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얻으시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은혜로, 승리하시고,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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