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장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104(104) 122(122) 126(126)
우리는 사복음서를 가지고 있는데,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소개하며,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래서 피곤해하셨고, 목말라하셨고, 울기도 하셨고, 주무시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인자”, 인간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제4 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일까요?
1.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는 말에 대하여, “무리한 주장이다, 어떻게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브레이크를 걸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불신자들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2.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는 말을, “사람 예수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되셨다”라고 이해함으로, 이단이 된 자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초대 교부 시대의 “아리우스”라고 하는 사람인데, 초대교회는 이렇게 주장하는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는데, 아리우스는 사람 예수가 하나님이 되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그 이후로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리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면서 소위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 교주가 된 하나님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는 재림 예수다”,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지금 한국에서도,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들이 대략 20여 명, 그리고 재림 예수라고 하는 자들이 대략 50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문선명(통일교). 박태선(전도관)이 그랬고, 안상홍(하나님의 교회), 조희성(영생교), 구인회(천국복음전도협), 이재록, 정명석(JMS), 박명호(엘리야 복음선교원), 이만희(신천지) 등등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이 되자”라고 한다고 해서 정말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있을까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은 하와와 아담도 하나님이 되지 못했고,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고 흩어짐을 면하려고 한 자들도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온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3.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라고 오해함으로써, 이단이 된 영지주의가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타락한 육신을 입으실 수가 없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실제로는 육신이 없는 영이셨지만, 육신을 가진 인간처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서 제일 큰 문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죄인을 대속하신 사건이 부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는 인간 구원은 십자가 대속이 아니라, 영적 지식을 확보하는 것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주장은 성경과 일치하지를 않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대속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일 4:2절에서 가르치기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이 1:7절에서는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로 죄를 대속하신 것을 부정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의 <바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 예수가 하나님이 되셨다”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되실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요한이 우리에게 <성탄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짧지만 아주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도 요한은 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고 하지 않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고 할까요? 그 이유는 요 1:1절에서 보는 것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신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은, 말씀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려주는데, <말씀>은 육신을 입고 성자 예수로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제2위의 하나님>이셨으며, 그에게는 사람들에게 줄 생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으로 오신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빌 2:6-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근본 본체 이신데, 사람의 모양을 입으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전하는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전하는 말씀, 즉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는 말씀과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은 전능하실 뿐 아니라 높으신 분이시고, 영화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으로 오셨다는 것은, 참으로 손해 보는 일 아닙니까?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좌천되었다고 하면서 괴로워하며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높고 영화로운 자리를 내려놓으시고,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가장 안 남는 장사, 가장 손해 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4가지 정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왜 보여주시려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안 보면 없다고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수한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고 메시야가 오신다고 예언하셨으나, 사람들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섬겼습니다. 때로는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바위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나무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엉터리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번 보여주시려고, 그래서 믿게 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안 보고 믿는 것이 더 복되지만, 안 보면 못 믿는 자들이 많기에, 보고 믿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남께서도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에게 요 14:9절에서 보는 것처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2. 우리와 깊이 교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는데, 여기 <거하다>라는 말은, <텐트를 치고 함께 살다>라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잠깐 오셔서 교통하시다가 떠나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모세에게도 그렇게 교제하였습니다. 잠깐 심방하듯이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아예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텐트를 치고 함께 거하시면서 교제하셨습니다.
저는 텐트의 교제가 어떤지를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요즘은 삶의 질이 나아져서 여름에 4박 5일의 Heritage Tour를 할 때에는 주로 Travel Lodge를 이용하지만, 전에는 텐트를 치면서 투어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Visiting Scala로 오신 분들은, 모두 텐트를 구입해야만 저와 함께 투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텐트를 치면서 투어를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비를 흠뻑 맞으며 텐트를 쳐야 하기도 하고, 텐트를 치면서 부부끼리 다투기도 하고... 별의 별 일이 있는데, 그런 중에 추억도 만들고,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깊은 교제를 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텐트를 사방으로 치면서, 입구는 모두 중앙으로 볼 수 있게 하여, 서로 바라보면서 식사도 하고, 또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 차를 타고 오면서 부부끼리 다툰 일,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와 신앙의 선배들이 살았던 삶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행하고 돌아오면, 그분들과는 훨씬 깊은 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시려고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께로 오는 사람을 누구도 쫓아낸 적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쫓아내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병자들이 올 때도 <돈 갖고 오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받으시고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요 7:37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 하나님이 사람되신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래전에 불교계에서 아주 존경을 받던 승철 스님이 돌아갔을 때,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하였던 그분은, 수 십년간 석좌해서 도를 깨치고 지옥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고 해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구원을 얻는다면, 과연 몇 사람이 천국으로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서 사람을 천국에 받아들이신다면, 아마 천국은 텅텅 비고, 썰렁한 분위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좋은 천국을 만드시고 썰렁한 천국으로 두시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 좋은 곳에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아름다운 잔치를 배설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집 지어서 휑뎅그렁하게 비워놓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하나님이 그 좋은 천국을, 분위기 썰렁하게 만들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좋은 천국에, 무수한 사람들을 들이시고 잔치하시려고, 저와 여러분들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 되어 오셔서, 십자가로 대속하시고, 누구든지 <십자가로 대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 3: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4. 하나님이 사람 되심에 대한 이유 한 가지만 더 살피면,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담 이후로, 사람은 본래의 의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모두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는 더 이상 교제할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석가는 부인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고행하다가 해탈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본래의 의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시면서, 인간의 원래 모습은, 죄 짓고... 죽이고... 거짓말하고...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원래 모습이다....>라고,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아 살기를 원했고, 그러면서 권면하기를 고전 11:1절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사실에 대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시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에는 감동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장관이나 경찰서장이 화장실 청소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합니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합격한 사람이, 식당에서 일하는 초등학교 나온 아가씨를 사랑해서 결혼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남자가 사기를 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당신의 모든 권세와 품위와 자존심을 버리시고,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성탄의 계절에, 성탄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기쁘게 섬기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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