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장 9-13 좋은 사귐은 유익합니다. 1, 221(525), 465(523)
사진을 봅니다. 콩나물은 저렇게 어울려서 자랍니다. 다음 사진도 봅니다. 나무도 어울려서 자라야 하늘 높이 자랄 수 있습니다. 별도 같이 있어야 더 밝게 빛납니다. 그렇듯 사람도 함께 살아야,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돌멩이는 혼자 있어도 견딜 수 있겠지만,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은 너무 힘듭니다. 원하는 조건을 다 갖추고, 최상의 환경을 유지하고 살아도, 혼자 살면, 사는 맛이 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담이 살았던 에덴동산을 아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파라다이스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갖추려 해도, 그런 환경을 갖출 수 없는, 천국 비슷한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살던 아담의 삶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하나하나 이루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좋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창 2:18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좋은데, 딱 하나, 좋지 못한 것은, 아담 혼자 살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혼자는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 2:21절에서 보는 것처럼,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같이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고 하는 말이, 23절에서 보는 것처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하였고, 그리고 두 사람은 24-25절에서 보는 것처럼, 결혼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함께 살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열림교회를 이루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도, 좋은 사귐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사귐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좋은 사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에서 그런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보실까요?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부르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신 하나님은 <미쁘시다>라고 합니다. 믿을만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단지 죄에서 구원얻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기 위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와 사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람이 서로 교제하기 위해서는 만남이 필요합니다. 만나지 않고서는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도 만나고, 성경 공부로도 만나고, 식당에서도 만나고, 커피숍에서도 만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으로 계시기에,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으로는 예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경을 펼쳐야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교제케 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과 항상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계십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면, 아름다운 화제가 생기고, 칭찬거리가 생기고, 미담이 생기듯이, 여러분들은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아름다운 간증 거리를 만드시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는, 의롭고 바른 존재들이었기에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 53:6절에서 보는 것처럼, 각기 제 길로 가던, 패역한 존재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은혜로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펼치고,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셔야 하며,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많은 유익을 얻는데, 죄를 멀리하려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마음에 평안을 얻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어떤 시험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깁니다. 감사가 많아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과 아름답게 사귀면, 우리의 삶이 점점 주님을 닮아 갑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또 다른 사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보실까요?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가장 바라시는 것이 있음을 밝히는데, 그것은 하나 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하나 됨>을 바라는 이유는, 11절에서 보는 것처럼 글로아의 집 편으로 소문을 들으니,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있다고 하기에, 그런 분쟁을 그치고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었던 분쟁이란, 12절에서 보는 것처럼 교회에서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가 생겨 서로 써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런 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왕따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즘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왕따라는 것인데, 고린도 교회는 4파의 분쟁과 왕따로 인하여, 매우 어지러웠던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파벌이 생기면 안 되고, 또 소외감을 느끼는 성도가 없어야 합니다. 성도가 소외감을 느끼게 되면, 견디지 못하고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편을 만들고, 끼리끼리 친하게 지내면 안 됩니다.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로 오시는 분들에게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먼저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손도 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교회에 소속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책임이 있고, 사명이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아름다운 사귐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업에 크게 성공한 어떤 분이 변변치 않게 사는 동생에게, 멋진 자동차를 한 대 사 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동생이 그 차를 타고 가서 차를 세우고, 물건을 사서 나오는데, 한 아이가 정신없이 자동차를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야, 차가 마음에 드냐?” “예, 참 멋지네요.” “그래? 우리 형님이 사 준 거다” 그러자 “그러세요?”라고 하면서, 아이가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동차만 보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애야, 한 번 타 볼래?”라고 했더니, “정말로요, 한번 태워주세요” 그래서 차를 태워주었더니, 얼마 가지 않아서 아이가 “아저씨, 감사해요. 여기 잠간 내려 주세요. 그리고 잠깐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왜?”라고 했더니, “제 동생에게도 이 좋은 자동차를 구경시켜 주게요.”라고 하고는, 아이가 뛰어가더니, 동생을 업고 오더랍니다. 동생이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업은 동생에게 이러더랍니다. “봐라, 저 차를, 저분의 형님이 사 주셨대. 나도 나중에 돈 벌어서 너에게 저런 차를 사 줄게.”
그때 그분의 가슴이 뭉클했답니다. 형제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끼리 아름답게 사귀고, 가족끼리 아름답게 사귀고, 교우끼리 아름답게 사귀는 그곳에, 이 땅에서의 천국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사귐을 가지면 복이 되는데, 가끔씩 잘못된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사귐은, 사람을 망가지게 만들고, 공동체를 망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찬송가 가사에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라”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나쁜 사귐은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들이 서로 좋은 사귐을 나누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은 10절에서 가르치기를, “같은 말과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지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같은 말”이란, 의견이나 취향을 통일하라는 뜻이 아니라, 같은 진리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등등의 진리는,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강한 힘을 가지기에, 이런 말을 하면서, 아름다운 사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지라고 하는데, 이것은 성령의 마음으로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 되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이해하게 하시고, 포용하게 하시고, 다시 사랑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가르치는 바는, 이런 것입니다. “비록 너희가 파벌과 왕따로 인하여, 사이가 멀어졌다고 하여, 다시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맡기면, 하나 됨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아름다운 사귐을 가지면, 놀라운 열매가 열리는데, 몇 가지만 열거해 보면, 1) 치유가 일어납니다(Healing takes place).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오는 상처는 거의 모두가 관계에서 오는 것이며, 그러한 상처의 치유 또한 관계 속에서 있기에, 아름다운 사귐을 가지면, 관계에서 온 상처는 모두 치유되는 것입니다.
2) 신앙이 자랍니다(Faith grows).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활동하면, 우리의 신앙은 훨씬 견고해집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아름다운 사귐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는 유익을 얻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3)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합니다(It unites the community as one). 좋은 사귐은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지체’로 바라보게 하며, 그 지체가 아름답게 세워지도록 수고하며 애쓰게 됩니다. 마치 손을 위하여 발이 움직여 주고, 반대로 발을 위하여 손이 활동할 때, 몸의 지체는 더욱 건강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4) 외부에 복음의 향기가 퍼지게 합니다(It spreads the fragrance of the gospel outward). 교회 안에 진짜 사랑의 교제가 넘쳐날 때, 바깥사람들은 그 사랑을 보게 되고, 그들은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천로역정을 지은 존 번연도, 방황하던 중에, 존 기포드 목사님의 교회 여성도들이 아름답게 교제하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감동을 받고, 다시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좋은 사귐은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름다운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우들과의 사귐도 더욱 두텁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고, 그러면 신앙이 자라고,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더욱 아름답게 세워져 가고, 하나님 나라의 일이 힘 있게 이루어지면서, 외부로 복음의 향기가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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