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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2장 1-11 첫 표적의 의미(26.04.12)
김태규 2026-04-12 추천 0 댓글 0 조회 7

21-11 첫 표적의 의미 1, 213(348), 436(493)

 

여러분들은 성경을 읽으십시오라고 하는 목사의 말에 부담을 느끼시나요? 그래도 목사는 그런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 1:3절을 보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도들이 부담을 느끼더라도, 성경을 읽도록 권하여, 성도들을 복된 삶을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고, 때로는 <왜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게 하시고는, 그 뱀의 머리를 잡으라고 하시지 않고,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면 물릴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2장 앞부분을 펼쳤는데, 본문 말씀도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두 가지 궁금증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는, 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첫 기적을 혼인잔치 집에서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으로 나타내셨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부정적인 답을 하시고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두 가지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칫집에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 궁금한 이유는, 성경에서는 술에 대하여 아주 부정적으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지요.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은 있어도 술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으니, 술 마시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맞는 말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술 마시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술이란, 취하지 않기 위하여 적당히 마신다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취하게 만들고, 그래서 사람들이 술 때문에 방탕하고,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성경의 예를 들면, 노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수에서도 살아남은 노아가, 술 때문에 아들을 저주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소돔 성에서 구출 받은 롯도, 술 때문에 두 딸과 근친상간을 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술에 대하여 경계시킵니다. 5:18절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합니다. 23:21절에서는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라고 하며, 23:29절과 30절은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잠 23:20절에서는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잠 23:31절에서는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씀보다도 더 엄한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는, 첫 기적을 혼인 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공생애 첫 표적으로 병자를 고쳐주셨다든지, 아니면 오병이어 기적 같은 것을 행하셨다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고, 술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첫 표적으로, 성경에서 아주 부정적으로 말하는 술을 만드셨을까? 그 첫 표적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런 질문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같이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심은, 십자가를 지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속죄함을 받은 자들은,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은, <나는 이제부터 죄인들을 천국으로 이끄는 일을 시작하노라>라는 <선언>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려면, 혼인 잔칫집이 천국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도 살펴야 합니다. 성경은, 종종 천국을 혼인 잔칫집으로 비유하는데, 그 이유는, 혼인 잔칫집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듯이, 천국도 기쁘고 즐거운 곳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혼인 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그 잔치를 더욱 흥겹게 하셨던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천국 잔치를 배설하는 것이고, 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혼인 잔칫집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누릴 것을, 그림자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기적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됩니까? 3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가 초청을 받은 그 혼인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는, 잔칫집의 즐거움이 시들해질 수밖에 없는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보실까요?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무슨 말입니까? 잔치가 계속될수록, 이 잔칫집의 포도주 맛은 더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혼인 잔칫집에서, 자신으로 인해 잔칫집의 즐거움이 더한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보여주시면서, 장차 자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천국 잔치에 초대될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의, 첫 표적의 의미는, 한시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인생에게, <앞으로는 십자가의 구원으로 인해, 천국에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를, 첫 표적으로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대충 읽고 끝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랐는데, 초대받은 손님이셨던 예수님께서, 기적으로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래서 그때부터 예수님은 영광의 길로 달리시는 구나! 역시 멋져!!> 이렇게 생각하고 성경을 덮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이때부터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달려가시기를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본문을 여기까지 이해해야,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의 첫 표적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예수님은, 혼인잔치 집에 초대되어, 같이 흥을 누려야 했던 분이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혼인 잔칫집에, 손님 자격으로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잔칫집에는 포도주가 모자라, 잔치의 분위기를 망칠 수밖에 없는 위기가 생겼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혼인잔치의 기쁨을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자신은 수난의 발걸음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선언하시기 위하여, 이 혼인 잔치에 오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칫집으로 향하신 발걸음은, 장엄한 각오를 한 발걸음이었습니다. 같이 잔치에 참여하는 제자들은, 그냥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이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시는 장엄한 발걸음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벳새다 들녘의 오병이어 사건 이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해도 거절하셨습니다. 지금 십자가에 몸을 내어주어야 하는 길로 가는데, 그래서 장차 초대된 손님들이, 가장 충만한 천국 잔치의 환의를 누리도록 해야 하는데, 어떻게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후에는 몰라도, 아직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예우해 주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은 왕의 자리도 거부하시고,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주어,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천국 잔치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산으로 가셨고, 거기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분께 찬송해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을 내어주시고, 우리로 천국 잔치에 참여하도록 해주신 그분을 위해, 우리는 보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두 번째 궁금증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하자, 본문 4절에서 보는 것처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뉘앙스는 어머니 마리아가 요청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7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인들에게 물을 항아리에 채우게 하고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자칫 혼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실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과 행동이 다르네...”라고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어머니, 제가 왜 포도주를 만들어야 합니까? 그 이유를 아시고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어머니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을, 기적으로 때우라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그런 일을 위하여 온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나는 지금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온 것은, 영광을 받으면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 된 자들을, 천국 잔칫집에 참여토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나는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저에게 요구를 하시려거든, 그런 차원에서 요구를 하십시오. 그런데 지금 보니,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이해하시지 못하고 계시니, 아직은 내가 Involve 될 때가 아닙니다...> 이런 뜻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우리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필요만 생각하고, 주님께 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체크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모르면서도 구하는 자를 향하여, <네가 구하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내가 아직은 Involve 될 때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심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5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구체적인 말씀은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는 종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시고, 8절에서 보는 것처럼 <떠다 연회장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하인들은 순종함으로, 보다 질 좋은 포도주로 손님들에게 Serving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우리는, 하인들의 순종에 대해서도 잘 보아두어야, 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는가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심은, 내가 잔칫집에서 흥겨움만 누리고 있을 수 없다는 것과, 또한 내가 무엇을 함으로써, 영광을 받도록 하려고 부르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장차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예수님을 따라 삶으로, 혼인 잔치의 흥을 돋우는 사역자로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게 산 결과를, 주님께서 나중에 보장하시겠다고 하시지, 지금 당장에 그 대가를 지불하시겠다고는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는, 보상보다는 주님을 따라 시중드는 삶이 급선무입니다.

 

품삯 먼저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은, 좋은 일꾼이 아닙니다. 충실히 일한 사람은 후한 대접을 받기 마련 아닙니까? 그런 사람은 늘 일에 우선순위를 두지, 삯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행하셨을 때, 2:9-10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보상이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떻게 천국 잔치의 흥을 돋우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명하심대로 순종하여, 물을 항아리에 채우고, 떠다 주었더니, 아무도 모르는 신기한 기적을 경험한 장본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9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인들은 알더라>라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아무도 모르는 <기적의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인들은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름받은 우리들의 삶도, 주님을 닮아야 하고, 하인들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나의 삶이 감격스럽고, 나의 삶을 통해, 이웃과 친척과 친구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기뻐하는 일들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서처럼 일어나야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천국 잔치를 배설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아직은 천국 잔치를 즐길 때가 아닙니다. 그 때를 기다리면서, 순종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웃들도 천국 잔치에 참여토록 자극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가 분명히 천국 잔치에 초대될 것이고, 천국에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자들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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