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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장1-5 하나님은 왕이시라(23.07.01-30)
김태규 2023-07-01 추천 1 댓글 0 조회 216

11-5 하나님은 왕이시라

 

이번에는 룻기를 함께 펼칩니다. 룻기는, 모압 지방에 살던 이방 여인 룻이 어떻게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따라서 이 룻기를 읽어보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있었기에, 마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논하면서 다섯 여인을 거명하는 중에 마 1:5절에서 보는 것처럼 룻도 거론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순탄하지 못하게 시작되는 룻기

 

그런데 룻기의 전개는 순탄하지 못합니다. 룻기의 저자는 룻기를 시작하면서 그 시대적인 배경을 1절 상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사시대 일반적으로 여호수아 사후, 그러니까 첫 사사 옷니엘이 등장할 때인 B.C. 1367년경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등장할 때인 B.C. 1025년경까지를 말하며, 그 기간은 대략 342년 정도입니다.

 

1).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

그런데 이 사사시대는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영적지도자로 있었을 때와 여호수아 사후의 얼마 동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으나, 여호수아가 죽은 후, 탁월한 영적 지도자가 없었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2).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왕도 없지요, 믿음도 식어졌지요, 삶의 환경도 많이 어렵지요, 그러니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삿 17:6절에서는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 시대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악한 자들이 이기는 세상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이 야곱과 레슬링을 하셨던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레슬링에서 하나님은 신사적인 방법으로 싸우시는데 간사한 야곱은 반칙을 하면서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창 32:25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야비한 방법으로 씨름하는 야곱을 이기지 못함으로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위골 시켜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악질적으로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악질적인 사람들은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사 시대에도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이기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활보하였을 것입니다.

 

3). 선량한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다...

그러니 선량하고 의롭게 살아보려고 하던 사람들조차도 내가 계속 이렇게 산다면 다 당하겠다...” 싶어 악당들의 편에 서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여도 그들 중에 남은 자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서도 노아는 창 6:9절에서 보는 것처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타락하였던 소돔에도 벧후 2:7절에서 보는 것처럼 롯은 무법한 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마음 아파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였다고 합니다.

 

4). 그런 중에도 시대의 조류를 따르지 않던 사람들

그렇다면 사사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시대의 조류를 따라 타락한 자들이 가는 길로 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을까요? 이에 대해서 2절 상반절 말씀은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엘리멜렉이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이 이런 이름을 지어준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마도 이런 이유였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보니 어지럽기 짝이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든지 우리는, 그리고 너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바로 살아야 한다그리고 이런 가훈의 글을 집에 걸어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남들은 곁눈질을 하면서 살아도 우리는 바로 가자!” Let's go right way even though others live out of their eyes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의인은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사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한 결 같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서 악을 행하였지만, 엘리멜렉의 부모님들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시대의 조류를 따르지 않고 경건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세, 이런 모습이 온전한 신앙인의 자세이며, 우리에게도 이런 자세와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쉽게 살려고 적당하게 세상의 조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참 평안이라는 것이 없는데, 적당하게 살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평안이란, 하늘나라에서 누리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딤후 1:8절에서 보는 것처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멜렉의 가정이 세상의 풍조와 풍습을, 그리고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를 따라 살려고 하지 않고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려고 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잘한 것입니다. 그런 삶이 좀 힘들고 어려울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삶을 사는 자들을 좋아하십니다.

 

5). 복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더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으로 살려고 한 엘리멜렉의 가정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룻 1:21절 상반절을 보면 엘리멜렉 가정이 베들레헴에서 살 때에는 풍족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풍족하다라는 말은 물질적으로도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었으며, 남편과 아내, 그리고 두 자녀가 있어 그야말로 유복한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6). 복을 누리던 중에 문제는 시작되고...

그런데 엘리멜렉 가정이 이렇게 살아가던 그 때에 1절 중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고대의 농사는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흉년이 든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언급하는 흉년은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레 26:3-5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면 풍성한 소출과 배불리 먹고 안전함이 약속되었으나, 반면에 레 26:19-20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우상을 섬긴다면 모든 수고가 헛되고 기근과 흉년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 특히 떡집이라고 불리던 베들레헴에서 있었던 흉년은 그들의 타락상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자연적인 요인에 의한 흉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였음이 분명합니다. 아마 한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타락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길에서 벗어나 죄를 지었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회초리를 드셨는데, 이번에는 외국의 침략을 당하게 하시기 것보다는 흉년이라는 징계로 그들을 벌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 땅에 들었던 흉년은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간에 삶에 엄청난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공동체의 생활에서 내가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함께 하는 이웃이 그릇되게 살아간다면 그러한 삶이 바르게 사는 나에게도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가정에서 누군가가 어려움을 당하면 온 식구가 어려워지듯이, 한 공동체 중에서 누군가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살면 그 공동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런 사실은 여리고 성 함락 시 불순종하였던 아간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아서도 자명합니다.

 

7). 결국 모압으로 이주한 가정...

그러므로 베들레헴의 흉년은 엘리멜렉의 가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럴 때 엘리멜렉의 가정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현실 앞에서도 시대의 조류를 따라지 않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자라고 하였던 엘리멜렉의 가정은 이번에 찾아온 흉년이라는 어려움 앞에서도 다시 한번 믿음으로 버텨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엘리멜렉의 가정은 1절 하반절에서 보는 것처럼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다고 하며, 2절 하반절에서도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았다고 합니다. 여기 '모압 지방'이란 원어적으로는 '모압 들판'(field of Moab)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아르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들판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에서 살던 엘리멜렉은 넓은 들판이 있는 모압으로 이주하여 흉년을 면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8). 이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모압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에서 살던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이주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면을 두고 무턱대고 잘못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하나님께서 예외적인 허락을 하신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창 46:2-3절 말씀에서는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초청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로는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도 갈 수도 있고, 모압으로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놓고 무턱대고 그것이 나쁘다고 지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엘리멜렉의 가족들이 모압으로 이주한 사실을 놓고 무턱대고 그것은 잘못 되었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간 사실에 대해 성경은 좋은 측면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룻 1:21절 말씀에서 나오미의 고백을 보면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이라고 합니다. ,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을 따라 모압으로 갔더니 하나님께서는 징벌하셨고 괴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9). 죄에 대한 형벌은 무섭다...

성경은 그 징벌과 괴롭힘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데, 본문 3절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모압으로 이주하였던 엘리멜렉은 그곳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나오미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아들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나오미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아들이 있었기에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살면서 말론과 기룐 이 두 아들을 결혼시켰음을 4절 상반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론과 기룐 중에서 누가 장자였고, 또 오르바와 룻은 각각 누구의 아내였는가를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2절 말씀을 참고할 때 말론이 먼저 소개되고 다음에 기룐이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말론이 장자이고 기룐이 차자입니다. 그런데 4절을 다시 보면, 오르바가 먼저 소개되고 다음에 룻이 소개되기에 오르바가 말론의 아내이고 룻이 차자 기룐의 아내로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룻 4:10절 상반절 말씀에서 보면 룻은 장자 말론의 아내입니다. 이렇게 순서가 바뀌는 것은 교차 대구 기법 형식에 의한 표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저자가 어떤 형식으로 성경을 기술하고 있는가도 이해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은 잘 알 수 없기에 주석가들의 활동이 필요하고, 성경 교사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오미가 두 아들을 장가보내고 잘 살고 싶었는데 모압에 거주한 지 10년 쯤 지났을 때 5절 상반에서 보는 것처럼 말론과 기룐도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5절 하반절에서는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라고 합니다. 나오미가 두 아들과 남편 뒤에 남았다는 표현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 뒤 쳐져 남아있는 나오미의 모질고 비참한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한 때는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잘 살던 집안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흉년 때문에 엘리멜렉의 가정은 모압으로 이주하였다가 너무나도 비참하게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10) 우리가 교훈받고 도전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을 봅니까?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하여 언제나 굳센 믿음으로 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약해질 수 있고, 흔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늘 체크되어야 하고, 무장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더욱 무장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시대의 조류를 따르지 말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에 편승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한눈을 파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엘리멜렉은 그런 삶에서 실패하였기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왕이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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