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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장39-43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24.03.24)
김태규 2024-03-24 추천 0 댓글 0 조회 69

2339-43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144(144) 150(135) 341(367)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고난주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사역을 감당하신 후,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눅 23:33절을 보면,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해골이라고 불리는 언덕으로 끌려가셔서, 거기에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이 언덕을 해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멀리서 그 언덕을 바라보면, 해골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말로는 골고다 언덕이라고도 불렀는데, 골고다라는 말도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갈보리, Calvary> 라고도 부르는데, 이 말은 라틴어로는 해골을 뜻하는 <갈바리아에, Calvariae>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런데, 해골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한 개의 십자가가 아니라,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이고, 다른 두 개는 행악자들이 달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행악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강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강도들이 무시무시한 죄를 짓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기 때문에, 누가복음에서는 <행악자>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달린 두 행악자는 당시 가장 흉악범을 처형하는 십자가 형벌을 당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흉악범처럼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골 1:20절에서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육체적인 면에서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더 힘든 것은, 십자가는 저주 받은 자로 취급 받는 수치를 당하는 형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3:13절에서는, 보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라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모욕 중에 모욕을 당하신 것이며, 수치 중에 수치를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하늘 보좌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셨지만, 또한 그분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인간들로부터 저주 받은 자로 취급당하신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수치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근거가 있을까요? , 있습니다. 10: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라고 하시면서, 18절에서는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였기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고, 그래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대속하는 십자가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절규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나, 육체적인 고통은 감당하셔야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너무 심한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절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도 하셨습니다. 인내심 많으시던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절규할 정도였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을까를 족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었고, 승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다 이루었다"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비록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은 있었으나, 결국은 승리의 개가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고난 주간을 지내면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져주신 주님을 깊이 묵상하여야겠습니다. 나의 모든 죄, 주홍 같이 붉고, 먹물같이 검은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당하신 주님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찬송을 부르십시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네,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네.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를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이런 찬송을 부르며 살 때, 주님의 은혜가 크게 더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벤허 영화를 보셨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상 적인 내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볼 수 있는 한 장면, 멸시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던 나병 환자들, 그래서 가족들과도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깨끗이 고침 받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죄 씻음을 받고, <가슴의 먹먹함과 염려와 근심 걱정과 고통의 멍에를> 다 벗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님도 아시기 바랍니다. Freedom is not free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Free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가까이에 그냥 있다고 하여, 이런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본문 39절을 보십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라고 합니다. 이 행악자는 예수님의 곁에 있었지만, 계속해서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그런데 40절을 보면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곁에 있던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둘이 이렇게 다릅니다.

 

그런데, 27:44절을 보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막 욕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두 강도들이 예수님을 비방하며 욕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곁에 있던 한 편 강도는, 마음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후에 나타난 현상을 보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들으니, 믿음이 생기고,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회개하는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41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예 자신의 죄를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의롭다고 합니다. 이게 회개의 바른 모습입니다.

 

그렇게 회개한 그 행악자는, 42절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자신의 구원을 의탁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하늘나라에 대한 진정한 소망을 가졌기에, 자신은 반드시 그 나라에 주님과 함께 이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43절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 그 죄수에게 분명하게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내일, 모래가 아니라, 먼 훗날에가 아니라, 오늘,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 때문이요, 행악자는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이시기에,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구원을 선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한 편 강도에게 구원을 선포하신 그 주님께서는, 나의 구원도 책임지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허물, 추악한 죄를 고백하십시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 나의 연약함, 내 몸의 질병, 내 마음의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모두 주님께 맡겨드리십시다. 그래서, 53:5절 말씀처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는 말씀이, 실제로 나에게 적용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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