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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0장 17-24 성도의 기쁨(24.04.07)
김태규 2024-04-07 추천 0 댓글 0 조회 53
1017-21 성도의 기쁨

 

우리의 삶에 있어서, 기뻐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기쁨은, 세속적인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는 일시적인 기쁨이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런데 일시적인 <세속적 기쁨>과는 대조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본질적이요, 영원한 기쁨인 <영적 기쁨>입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요, 교회의 기쁨이요,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는 눅 10:17-21절 말씀을 함께 펼쳤는데, 이 말씀에는 성도들이 누릴 3가지의 영적 기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설교 제목을 <성도의 기쁨>이라고 정하고,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영원하고도 진정한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살피고, 이런 기쁨이 <저와 여러분들의 기쁨>이 되고, <우리 열림교회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본문에서 보여주는 첫 번째 기쁨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승리한 기쁨입니다.

10: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칠십 인의 제자를 세우시고, 둘씩 짝을 지어서, 예수님께서 친히 가셔서 전도하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파송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면,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연약한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한다는 것은, 세상의 <강한 악의 세력>과 영적인 싸움을 하여야 함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렵고, 고생과 핍박이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4절에서 보는 것처럼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라고 합니다. 힘든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제자들이기에, 잘 준비하여 가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조차도 소지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이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한 주간 동안 그리스의 데살로니끼로 가서, 주일학교를 섬기고, 또 선교센터 수리를 하고 돌아온 미션 트립 팀도 많이 수고하셨을 것입니다. 오시는 길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만나 또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하면서 박수 한 번 쳐 드리십시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70인 제자들도 전도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인데, 우리가 펼친 본문 17절 상반절 말씀을 보면,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이르되 라고 합니다.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기가 죽고, 풀이 죽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기뻐 돌아왔다>고 합니다.

 

왜 그들이 기뻐하며 돌아온 것일까요? 17절 하반절을 봅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이 전도하면서 귀신들도 항복시키는 일이 있었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원수 노릇을 하는> 강력한 영적 존재 아닙니까? 그런데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자, 귀신들도 항복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하는 말은 허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18절을 보실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하는 말을 인정하시고 계십니다. 귀신의 대장인 사탄도 급속도로 추락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감당해 내었을까요? 17절 하반절을 다시 보실까요?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이 전도하면서 다른 방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항복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승리의 기쁨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무슨 교훈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승리할 때,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열림교회도, 주님께서 주신 전도의 사명, 구제의 사명, 빛을 발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사명, 소금처럼 부패를 방지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명, 금년 표어처럼 <한 마음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어, 칭송을 듣는 교회로 세워져 가는 사명, 그래서 더 부흥하는 교회로 세우는 사명... 등등의 많은 사명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잘 감당하므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왜 이런 도전을 드리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19절 말씀 때문입니다. 보실까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실 때,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 권능을 주신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항복시키고 기뻐하며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치 않으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시면서, 모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제자들처럼 승리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항복시켰던 것처럼, 우리도 <주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도, 구제도, 봉사도, 희생도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이름으로도 안 됩니다. 운영위원회의 이름으로도 안 됩니다. 리더의 이름으로도 안 됩니다. 팀의 이름으로도 안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거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고, 거기에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들을 전도하도록 보내시면서,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이해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열림교회도,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입니다. 우리에게 권능을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면, 우리는, 그리고 열림교회는, 주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넉넉히 감당함은 물론, 사탄의 권세도 제압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본문에서 보여주는 두 번째의 기쁨은, 성도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기쁨입니다.

20절을 보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의 강조점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말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이런 일은 기뻐할 거리가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능을 이용하여 귀신들을 항복시키는 일도,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기뻐하며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마치 귀신이 항복하는 것은 기뻐하지 말고,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란 이런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격하기 보다는, 자기가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에서 <더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얻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는 일이 <좀 괜찮고, 좀 인정을 받고, 좀 성공적으로 보이면>, 흐뭇해하고 뿌듯해 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정 반대의 현상으로 흐르면>, 기쁨은 사라져버리고, 맥이 빠진 사람처럼 우울해 하고,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그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누구인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십자가로 대속하셨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고, 그래서 이제는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이것만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으면, 내 삶에서 나타나는 성과는 좀 잘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기에, 거기에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꼭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주시면서 누리게 하는 기쁨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빼앗지 못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에 성공해도, 그리고 실패해도, 그것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기쁨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영생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과 같은데, 우리가 영생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좀 더 잘 섬기고, 잘 전도하고, 남들보다 더 인정을 받고, 박수를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생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저런 일을 해야 하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날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 밑으로 날마다 나아가, 주님과 깊은 사귐을 가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의 뜻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실에 대해 기뻐하면서, 또 다른 기쁨을 누리는 일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교회가 누려야 하는 기쁨은 성령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21절 상반절 말씀을 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다른 것으로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여기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라는 말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뻐하셨다는 것인데, 마치 성령에 도취한 상태에서 기뻐 날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예수님을 그렇게 크게 기뻐하시도록 감동시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21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께서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의 선포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방금 70인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하여 구원을 얻게 한 복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복음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셨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자는 누구이고, 후자는 누구일까요? 전자는 율법에 대한 지식과 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후자는 세상적 지혜나 율법적 지식이 부족하지만,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복음을 수용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대하시는 구원의 대상은 둘임을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 우리들 생각대로라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 구원에 이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에 대하여, 천지의 주제이신 하나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복음의 메시지가 필요 없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린아이들은 매우 연약한 존재들이며, 그러므로 겸손하게 도움을 바라며 복음을 수용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전 1:27절을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시기도 하시고, 택하지 않기도 하시는데,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미련하고 약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자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런 구원의 역사를 보면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서 내 마음대로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왜 저러시지? 왜 이러시지?>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우쳐주셔서 <, 하나님께서 저렇게 하시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구나!>라고 하면서,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가 가지는 기쁨에 대해 말씀해 줍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고 누리는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기에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성령께서 깨우쳐 주셔서, 성령으로 기뻐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섬겨야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서 기쁨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더 깊이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기뻐하며 그 일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 그리고 우리 열림교회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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