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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2장1-11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25.03.09)
김태규 2025-03-09 추천 0 댓글 0 조회 78

21-11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88, 452(505), 455(507)

 

우리는 종종 "내 마음이 너무 아파요", 혹은 내 마음이 너무 좋아요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애서 답답한 일을 만난다든지, 어려운 일을 만난다든지, 슬픈 일을 만나면, “마음이 아파요라고 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파요라고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은 머리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의 생각 기관이 곧 마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가슴에 있는지, 머리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에게는 <마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 마음이 도데체 어떤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AI에게 물어보았더니, “마음은 우리 인식의 중심이며, 우리의 신념, 가치관, 감정 및 판단 등을 형성하는 근원이라고 하였고,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마음은 지, , 의를 움직이는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AI나 국어사전의 정의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좋지 않은 사건이 생기고, 반대로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란,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는 근원이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마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보면, “마음이란 우리의 생을 주장하는 본부요, 신앙의 좌소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 롬 10:10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시 14:1절을 한번 보실까요? 거기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도 마음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는 마음이란, “인생을 좌우하는 기관이며, “신앙의 좌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인격을 좌우하고, 내 믿음을 좌우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품고 사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잠 4:23절에서는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잘 지키며 사십니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얼굴과 신체의 외모를 가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성형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연세가 드신 분들도 얼굴에 주름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목사도 얼짱 아니면 인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모두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기에,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인하여 인류의 마음은 완전히 타락하고 부패하여, 자꾸만 악하게 생각하고 행동을 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렘 17:9절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다라고 합니다.

 

다른 성경도 보실까요? 8: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합니다. 6: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걸리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나는 언제나 거룩하고, 옳은 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며 산다고 하실 수 있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담의 타락 이후로, 근본적으로 부패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하나님을 등지고, 이 세상 풍속을 좇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바울은 엡 2:2-3절에서 확인시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합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입니까?, 서로 질투하고, 비방하고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는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 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라고 합니다.

 

만약에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마음이 하나 되어, 서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권면을 하고 있고, 위로를 하고 있고, 교제를 잘하고 있었다면, 바울은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다툼이 있었고, 허영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가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소란하고 혼란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그러지 말라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패한 마음은, 개인은 물론 사회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된 마음으로,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의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 안으로 내가 들어가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앞으로 무엇인가 굉장히 어려운 것을 감당하도록 요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절 말씀을 보시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좋은 일들이 열거되어 있습니까? 이런 좋은 일들을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일들이 있으면 서로 잘 어울려서 잘해 나갈 것 같은데, 사실은 이 부분에서 성도들이 아주 약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자들의 신앙생활 문제에 있어서, 가장 많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잘못되고 틀린 문제보다는, 옳은 문제, 잘하는 문제에 더욱 거침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잘하는 것 가지고 큰 소리치고, 잘한 것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돌팔매질을 막 해대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잘하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잘난 사람들의 괄세까지 짊어져야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래서 감정이 상하고,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고,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옳은 것을 요구하고, 거룩한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룰(rule)을 따라서 옳고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옳음과 거룩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움과 덕까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거기에 사랑과 덕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으면, 그 옳음과 거룩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을 때,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옳고 그른 것으로만 풀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특히 좋은 일에 관한 것일수록 그렇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서, 사랑과 덕을 실천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좀 더 쉽게 설명드리기 위하여 4영리에서 나오는 그림을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림을 보시면 왼쪽 그림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있고, 예수님은 아웃사이드에 계십니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은,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으로 계시고, 나는 그 주인의 자리에서 물러나 있습니다. 따라서 나의 삶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의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마음은 삶을 주장하는 기관이요, 신앙의 좌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곧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들의 삶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고 있는지, 아닌지 말입니다. 점검의 방법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계시면서, 여러분들의 삶을 주장하시는 삶이 나타나는가, 아닌가를 체크해 보시면 되실 것입니다.

 

도움을 드리기 위하여, 또 사진을 보여 드립니다. 이게 무슨 사진입니까? , 나무 사진인데, 무슨 나무인지는 알 수 있습니까? 잘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다음 나무는 무슨 나무입니까? 알 듯 말 듯 하시겠지요. 그러나 확실하게 말씀하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나무는 무슨 나무입니까? , 사과나무입니다.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있기 때문에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는 열매로 압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인가 아닌가는, 내 삶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다면, 내 삶에서 그 열매가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열매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6절을 보시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면서도, 아버지 앞에서 겸손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7절을 보실까요?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합니다.

 

, 겸손하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비우셨고, 한 없이 비천해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합니다.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고, 낮아지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까지 마다 않으시는 순종의 삶을 사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서도 이런 삶이 나타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형체나 색깔로 닮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닮으라고 한 것은, 예수님처럼 겸손하라는 것이고, 자기를 비우라는 것이고, 한없이 낮아지라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들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열매가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자가 누리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보십니다. 9-11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뀌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참으로 아름다운 대가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부터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대가를 말씀으로 약속해 놓으셨을지라도, 비운다는 것,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은, 대가를 전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죽음을 각오했으니, 나를 영의정 시키고, 내 동생을 좌의정 시켜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라면, 대장이 되겠다고 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비우고, 낮아지고, 죽는 졸병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이지, 내가 요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 내가 할 일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다가, 안 품었다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비운 것 같이, 순종하는 것 같이 살아가는데, 어떤 때는 전혀 그렇지 않게 행동하여, 사람들에게 혼동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촐랑거려서는 안 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 몸을 닮을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겠지만, 오늘 성경은 좋은 일에 더욱 겸손하며, 비우고, 낮아진 자세로 졸병 노릇을 하라고 하십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좋은 계절을 만나, 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길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포근하고, 기쁘고, 감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와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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