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1장 11절 성도가 경계해야 할 길 28 379(429) 370(455)
오늘 우리는 유다가 기록한 말씀 한 구절을 함께 펼쳤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주님 생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나,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변화되어, 예수님을 메시야와 구주로 믿게 되었고, 그 후로 그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 시작하였으며, 본서를 기록하여 성도들을 권면하였습니다.
유다가 본서를 기록한 이유는, 초대교회 상황을 보니,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들어와서 성도들을 유혹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된 길로 행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11절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하면서, 잘못된 길을 경계시키고, 바른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3가지 유형의 <잘못되고 어그러진 길>이 공개되는데, 먼저는 가인의 길이고, 다음은 발람의 길이고, 세 번째는 고라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런 길로 행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가지의 길이 왜 잘못인지를 살피고, 우리는 이런 길로 행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 먼저 가인의 길에 대하여 보면, 가인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된 길을 걸었습니다. a. 하나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창 4:3절을 보십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라고 하는데, 5절 상반절 말씀을 보면,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을까요? 이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벨은 짐승으로 피 있는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곡식으로 피 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좀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5대 제사 중에서, '소제'는, 식물로 드리는 제사이므로, 피 없는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농산물로 제사 드림이, 단지 피 없는 제사였기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히 11: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알려주는 것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피>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가인은 그저 형식적으로 제사하므로, 그 제사가 열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 1:11-12절 말씀을 보실까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13절에서는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릴 때의 문제는, 제물의 문제보다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믿음과 헌신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제물은, 무수한 제물이라도 무익하고, 수송아지, 어린 양, 수 염소의 피일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므로, 믿음 없이 제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전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가요? 예배를 드릴 때 제물은 준비하시나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시는가요?
<믿음으로 예배한다>라는 의미는, 우리가 예배하는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께서 말씀 선포자를 도구로 삼아 말씀하신다고 여기면서 말씀을 경청하고, 내가 올려드리는 찬송을 받으신다고 생각하시면서, 성심으로 찬송하며 예배하는 것이, 믿음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가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말씀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찬송도 의미 없이 부르고, 예물도 성의없이 드린다면, 그 예배는 가인의 길로 행하는 것일 수 있기에, 우리는 결코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b. 가인의 두 번째 잘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던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살인하는, 인류 최초의 살인죄를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았다면 회개하고, 다시 제사를 드리면 될 일인데도, 그러지를 않고, 살인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가인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최초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가인의 부모였던 아담과 하와의 기쁨과 감사는 대단하였을 것입니다. 가인이라는 이름의 뜻이, 창 4:1절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인데, 이런 이름을 지은 아담이, 가인을 낳고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슬픔과 애통과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들이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부모였던 아담 부부는 실망하며 애통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가인이었기에, 유다는 가인의 길을 경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길에 대하여 정리하면, 먼저는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고, 또 시기와 질투로 사람을 해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다음으로, 발람의 길이 왜 잘못된 길인지를 살피도록 합니다. 본문 11절을 다시 보면, 중반절에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러 갔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발람이 걸어간 길은, <삯을 위하여 가는 길이요, 어그러진 길>이기에, 잘못된 길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발람이 걸은 길에 대하여 살피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기 전,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진 쳤을 때, 모압 왕 발락이 발람에게 예물을 주며 청하기를,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민 22:12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 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이 보내온 황금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락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도중에, 나귀의 입을 통하여 책망을 듣는 일까지 당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짐승보다 못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발람의 길은 어그러진 길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후에 발람은, 자신에게 약속된 커다란 보상에 대한 탐욕으로 인하여, 발락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와 음행에 빠지도록 하여, 이스라엘이 큰 재앙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도 재앙을 내리셨지만, 발람도 형벌로 죽임을 당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삯을 위하여 간 발람의 길을 경계시키는데, 문제는 이런 길을 발람만 갔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삯을 위하여 이 길로 몰려가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 7:13-1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간다고 해서, 그 길이 옳은 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찾는 이가 적다고 해서, 그 길이 잘못된 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가? 그 길이 어그러진 길이 아닌가? 그 길이 멸망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영적으로 분별하면서, 바른길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우리가 가는 길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고, 삯을 위하고, 돈을 위하고, 물질을 위하는 길이라면, 그 길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일 수 있습니다. 복 받는 것만 목적이 되어 예수를 믿고, 병 고치기 위한 것만 목적이 되어 예수를 믿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만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바로 발람의 어그러진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보니까, 교회 안에 그런 자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행하도록 유혹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 길에 미혹되지 말고, 믿음으로 힘써 싸우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치우치지 않고, 바른길로 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기를 바라면서, 찬송 시로 이렇게 노래하며 나아갔습니다.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한 걸음씩 날 인도하소서”, 그리고 다른 시인은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시와 찬송이, 저들만의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고백이 되고, 찬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이제 마지막으로, 고라의 패역의 길에 대하여 보도록 합니다. 본문 11절 하반절에는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고라 자신도 패역하므로 멸망 받았고, 고라를 따르던 사람들도 동시에 멸망받은 사건을 말씀해 줍니다.
고라는 레위 자손이며, 고핫의 손자였는데, 고핫 족속은 성소의 모든 기구들을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민 4:15절에서 보는 것처럼 성물을 손으로 만질 수 없었기에, 고라 자손들은 광야 40년의 길에서, 언제나 그것을 어깨로 메고 다니면서 충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던 고라가, 주의 종 모세를 대항하여 월권을 하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모세를 모함하고, 항상 시비를 걸고, 뒤에서 수근거리고, 원망, 불평하는 자리에 앞장서고, 250명의 족장들과 함께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고, 반대편에 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여서, 민 16:3절에서 보는 것처럼, 모세와 아론을 거슬려 말하기를,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고라 자손들은 아름다운 성직을 맡았기에, 그것만 잘 감당하면 되는데, 모세가 하는 일까지 참견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민 16:9-10절에서 보는 것처럼, 모세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핫 족속이 받은 성직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분수에 넘게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목사직, 집사직, 성가대와 찬양단, 교사직, 그리고 이런저런 봉사의 직무도, 결코 작고 가벼운 일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사명은, 결단코 작은 일이 아니며, 따라서 소홀하게 여긴다면, 우리도 고라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깨우쳐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유다는 성도가 유의해야 할 세 가지 길에 대하여 경계시키는데, 첫째는 믿음 없이 행하며, 살인죄를 짓는 가인의 길이요, 다음으로는 불의한 삯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공동체를 타락시키는 발람의 길이며, 마지막으로는 자기의 분수를 살피지 않고, 교만과 불순히 행하면서, 패역하고, 멸망으로 가는 고라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런 잘못된 길로 행하기 쉽습니다. 내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며, 달콤한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살고, 편하게 살려고 한다면, 이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편히 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는 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유혹도 거뜬히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편히 사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구원 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복 받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시 1:1-2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런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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