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교인들은 한 때 바울이 증거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는 1절에서 보는 것처럼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율법주의자들의 미혹에 빠져 십자가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으로의 구원을 추구하고 있기에 바울은 그들을 향해 어리석다고 책망하면서 본장을 시작한다.
또한 2절에서 보듯이 갈라디아 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서,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3절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은 이제는 그 믿음을 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갔으니,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려한다고 거듭 책망한다.
그럼 왜 그들이 율법으로 돌아갔을까? 4절에서 힌트를 얻는바, 아마도 율법주의자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당하다보니 견디기도 어렵고, 또 자꾸 듣다가 보니 율법은 뭔가 보이는 것 같은데 믿음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5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 때문이라고 하며, 6-9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를 얻었는지, 어떻게 복을 받았는지를 증거하면서, 아브라함처럼 믿는 자들이 동일한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율법은 12절에서 보는 것처럼 율법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면 10절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을 의롭게 하기 보다는 온갖 일을 행하지 않는 자들을 저주 아래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며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11절에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13-14절에서 보듯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죄인들을 위하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려고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며,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성령을 받게 하려 하셨다.
15-18절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사실을 밝힌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율법이 있기 사백 삼십년 전에 이미 주어졌다고 한다. 이 사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을 근거하여 밝히는 것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기셨던 것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19-29절은 율법의 목적 및 기능을 언급하는데, 율법은 사람들이 죄를 범한 것을 드러내어 정죄하는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죄인은 살 길을 찾아야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몽학선생 노릇을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더 이상 몽학선생 이래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며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에 충실하여야 할 것이다.
기도:
1. 성령으로 시작하게 하였으니 날마다 성령으로 행하게 하소서...
2. 믿음으로 얻는 의를 날마다 덧입게 하소서...
3. 나 위해 저주를 받으신 주님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양자되었음에 감격하며 살게 하소서...
4. 내일 있을 야외예배가 잘 준비되어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소서...
5. 형주가 더욱 건강하고 살도 오르게 하시고, 안인영 집사님과 모친; Denise, Ruth, 배용민, 안혜정, 이찬희, 전은경 집사님의 모친; 실방, 윤영휘 집사님의 부친; 임종호 집사님의 장인과 이수현 집사님의 시부모님들의 건강도 더욱 온전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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