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장은 갈라디아 교회 내에 있었던 범죄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다루면서 시작하는데, 범죄한 자들을 대할 때 서로 짐을 나누어지겠다는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로 잡으라고 1-5절에서 권면한다.
사실 교회란 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모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죄인들이 모여서 완전해지기 위하여 연단받고 다듬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 내에는 언제나 범죄자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살펴야 한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법죄자를 보면, 그들을 바로잡기 위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짐을 나누어지려고 하기보다는 돌을 던지려는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 감옥으로 보내라고 하고, 죽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지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서로 짐을 나누어지라고 한다.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짐을 나누어 감당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이 바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남의 죄를 지적하는 그 사람도 죄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고 지적만 하려는 자는 되지도 못하고 된 것처럼 위선하는 위험이 있으니 자신을 잘 살피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의 눈의 티만 보려고 한다고 지적하셨다.
6-10절에서는 가르침을 받는 자가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나누면서 아름다운 교제를 가지라고 권면한다. 그렇게 해야 될 이유는 7절에서 보이는데,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육체를 위하여 심어 썩을 것을 거두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심어 영생을 거두는 삶을 살라고 교훈한다.
바울이 여기서 강권하는 선행이란 복음전파 자들이나 믿음의 가정들을 물질로 돕는 삶을 말한다. 당시에는 특히 이런 것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다보면 지치고 피곤할 수 있으나 피곤하다고 낙심하지 말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선행에 힘쓰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선행이 있어야 할 것이다.
11-13절은 율법주의자들의 유혹에 의해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구속의 원리를 저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가 할례를 받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시금 훈계를 하는 내용이다. 사실 갈라디아 교인들은 할례를 받음으로 두 가지 유익을 추구하였는데, ①유대주의자들의 박해를 모면하려는 것과 ②할례받은 육체를 자랑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멸망 길로 갈 뿐이라고 밝힌다.
14-18절은 인간의 여타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오직 십자가에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십자가 구원 진리를 버리고 율법으로 바울을 대적하려 하니 바울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외친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고. 왜냐하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에 누가 뭐래도 자기가 경험하고 믿는 신앙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믿음 가지자.
기도
1. 이웃이 죄로 인하여 아파할 때 고통을 가중시키는 자가 아니라 그 고통을 분담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소서...
2. 육체로 심어 썩어지는 것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심어 영생을 거두는 삶을 살게 하소서...
3.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흔적이 내 삶에서 나타나게 하소서...
4. 오늘 있을 예배가 잘 준비되어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소서...
5. 형주가 더욱 건강하고 살도 오르게 하시고, 안인영 집사님과 모친; Denise, Ruth, 배용민, 안혜정, 이찬희, 전은경 집사님의 모친; 실방, 윤영휘 집사님의 부친; 임종호 집사님의 장인과 이수현 집사님의 시부모님들의 건강도 더욱 온전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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