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장1-4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는가 1 183(172) 185(179)
저는 지난 주일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왜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던가요? 그 이유는, 예수님과 3년 동안 삶을 같이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자, 낙심하고 좌절한 나머지, 모여서 문을 닫고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은 주님께서 보시기에도 합당한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제자들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삶이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낙심하고 주저앉은 사람들, 힘들어 지친 사람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미래에 대한 해답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들, 이런저런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명을 받았으면서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받으라고 하신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행 2: 1-4절 말씀을 함께 펼쳤는데, 먼저 본문 2-4절을 함께 보십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말씀은, 성령 충만의 현장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 말씀을 별다른 생각 없이 읽으면, 성령 충만하였던 현장이 별로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그 현장의 상황을 상상해 보시면 느낌은 달라집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막 들리고,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상상해 보고, 또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다른 언어로 말하는, 그런 현장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놀랄 만한 일 아닙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초대교회가 어떻게 새워져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교회행전>이라고도 하며, 성령 충만을 받은 성도들이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행전>이라고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역사를 포함하여, 성령 충만한 역사가 무려 4번이나 나타났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렇게 성령 충만을 받은 자들이, 능력 있게 일하였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 충만한 역사들이 나타났을까요? 우선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보면, 본문 1절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제자들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기 위하여 오순절 날에 <다같이 한 곳에 모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와 함께 성령이 임하였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양으로 성령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도 주시고, 복도 주시고 성령도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시 40: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기다림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해서 복을 놓치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여,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가정불화가 일어나고,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고, 사업에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서부에 gold lush가 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중부의 어떤 젊은 사업가도 탄광을 사서 노다지를 캐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땅을 파도 금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짓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싶어, 그 탄광을 팔아버렸는데, 그 탄광을 인수한 사람이 1m를 팠더니, 노다지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답니다.
1m만 더 팠어도 노다지가 쏟아져 나올 것인데, 그 1m를 파지 못하고 포기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횡재하였다는 것입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포기하였기 때문에 빼앗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교훈을 얻어, 보험 시원으로 일하면서 1m만 더 파자는 정신으로, 고객들을 설득하여 노다지를 발견한 것보다 더 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는, 결국은 복을 누린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성경 말씀에는,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결과들이 나와 있습니다. 시 37:9절에서는 여호와를 소망하는(히브리어는 ‘카바’, KJV에서는 wait라고 번역) 자는 땅을 차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시 40:1절에서는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고 합니다. 잠 20:2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악에서 구출해 내신다고 합니다. 사 30:18절에서는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눅 2:25절에서는 성령이 그 위에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기를 원한다면, 같이 모여, 주님께서 성령을 넘겨주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기다려야 합니다. 혼자 기다릴 수도 있지만, 같이 모여 기다리는 것은 더 좋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에도 모이고, 기도회에도 모이고, 예배 때에도 모여야 합니다. 모이면 은혜를 받습니다. 모이면 성령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같이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고 싶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하면서도, 성령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모임에 실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교회에서 가지는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성전에서도 모이고, 집에서도 모인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냥 모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행 1:14절을 보십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성령 충만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말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성령을 받기까지, 계속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아마 그들은, 열흘 동안 제대로 먹지도 않고, 금식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철야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새벽에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열심히 부르짖고 기도하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눅 11:1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 중의 축복, 은혜 중의 은혜인,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축복, 먹고 마시고 입는 것보다도 <더 큰 축복>이, 바로 성령 아닙니까? 이 성령만 받으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만 하면, 성령만 체험하면,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성령 충만을 위하여,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금주 목요일 저녁에도 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함께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 받는 세 번째 비결을 행 2:38절에서 찾아보도록 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예, 여기에서는,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회개>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회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①죄악의 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②마귀의 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③세속적인 것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④자아 중심적인 것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이 모든 일이 회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자신들을 가만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께는 성령을 선물로 받고 있습니까? 없으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세상적인 것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자아 중심적인 것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비우지 않으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죄에서 돌이키고, 세속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4.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행 10:44절을 보시지요.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 말씀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으로 초청되어,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 충만한 역사가 있었던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고는,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친척들도 초청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고넬료의 가정이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고넬료처럼 말씀 듣기를 사모하시다가 성령의 술에 취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 행 5:32절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예, 오순절 날에 성령 충만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가능했음을 밝힙니다.
어떤 순종이었습니까?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고 명하셨고,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신 것에 순종한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하였을 때 회개한 순종입니다. 그랬더니 그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의 영이기에, 다른 인격과 충돌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내려놓을 때, 순종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성령 받기를 원하신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6. 안수할 때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 행 8:17절을 보십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예, 두 사도가 사마리아에서 성령 받기를 기도한 후에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7.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충실하게 살아갈 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음을 요셉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창 41:38절을 한 번 보시지요.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었는데, 이런 은혜는, 그저 <있는 자리,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노예요, 누명을 쓴 죄수에서, 일약 애굽의 총리로 역전되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비결 7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여 성령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성령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니면 그릇된 방법으로 성령을 받으려고 합니다. 행 8:18-19절을 한 번 보실까요?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라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므로 20절에서 베드로는 시몬을 향해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에 대하여 약속하시고 명령하신 일, 그래서 그것을 믿고 기도했던 저 제자들이 경험했던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모여 문을 닫고 두려워하던 그들이 오순절 성령 역사를 경험 후, 세계를 바꾸는 위인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까닭에 우리에게도 제자들처럼 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사건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엡 5: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술에 취할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같이, 비둘기같이, 갈증을 해소하는 생수같이 임하시는 성령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성도들로 서 가야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파선하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지치고, 낙심하고, 주저앉고, 뒤로 물러서는 자들이 아니라, 늘 열심히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가능합니다 우리가 살핀 비결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도 성령 충만한 자들로 서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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