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3장1-35 공회 앞에 섰던 그날 밤에 162(151) 374(423)
앞에서 본 바대로 바울은 천부장 앞에서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말하여 심문에서 벗어나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정식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그야말로 불의한 재판정이었기에, 바울에 관한 재판 결과는 보나마나 바울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 자리에 서서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자기변론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1절 하반절에서 보듯이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이었다.
한편 2절에서 보듯이 바울의 변론을 들은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분노하며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입을 치라고 하였다. 거룩한 공회로 모인 곳에서 공의로운 재판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라고 한 것은 참으로 큰 모순이며, 잘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반항하였다. ‘회칠한 무덤’이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으로,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매를 맞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자 누군가가 “대제사장을 욕한다”고 꾸짖었고, 이에 바울은 “모르고 그랬다”고 얼른 잘못을 인정하였다. 사실 대제사장은 그야말로 악의 원형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인하고 있는 직책과 권위를 경홀히 여기지 않았다. 우리도 이러한 바울의 고매한 인품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권위에는 순종하였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행하려는 악행을 그냥 당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악행에서 빠져나오기 위하여 지극히 인간적인 계책으로 지금 자기가 심문을 당하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서 신학적인 논쟁이 생겨 서로 분열하였고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은 바울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공의회의 분위기가 점점 험하여져 갔기에, 천부장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권력을 동원하여 바울을 군영으로 후송하도록 하였는데,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담대하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하셨다. 이는 이미 로마로 가고 싶은 비전을 가졌던 바울에게 승낙을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였기에 바울은 감격하였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던 그날 밤에...
그런데 12절을 보면 감격의 밤이 지나고 날이 새었을 때,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맹세한 암살단 40명을 구성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저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해도 바울은 천부장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바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자신들의 계획을 알리고는, 천부장에게 가서 재심을 요구하여 다시 공회로 모이겠다고 하면서 바울을 끌어내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면 자기들이 매복하여 있다가 바울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살단원들의 음모는 상당히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그러나 16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살해당할 위기에 있는 바울을 구원하기 위하여 바울의 생질이 저들의 음모 소식을 듣도록 하셨고, 이에 생질은 바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바울은 생질을 통하여 이 사실을 천부장에게 알리므로, 천부장은 밤에 비밀리에 많은 호위 병사들을 동원시켜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인 벨릭스에게 보냈는데, 바울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편지까지 써 보냈다. 이렇게 무죄한 바울을 석방시키지 않고 총독에게 보낸 것은 어찌 보면 부당한 처사이지만, 다른 편으로 생각하면 죄 없이 끌려 다니는 이 일로 인하여 바울은 로마로 갈 수 있는 터를 닦고 있는 것이다.
한편 천부장이 보낸 편지를 받아 본 벨릭스 총독은 바울에게 어느 지역의 사람이냐고 물었고,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태생임을 알렸고, 벨릭스는 길리기아 다소가 로마의 직접 통치 지역임을 알았기에 바울을 다른 관할권으로 보내지 않고, 35절 말씀에서 보듯이 송사한 사람들이 오면 바울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면서 바울을 헤롯 궁에 머물게 하고, 그를 지키게 했다.
그럼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였던 암살단 40명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바울을 죽이지 못하였기에 그들의 맹세대로 당당하게 굶어 죽었을까? 아니면 부끄럽게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왔을까? 만약에 그들 중에 회개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왔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간교한 유대인들 가운데 바울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극적으로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 진행에 개입하셔서 결국에는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 서게 하시고, 나아가서는 로마까지 가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사실은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유대인의 손에 방치하심으로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거나 대적자들을 기쁘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기도
1. 은혜를 악으로 갚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2.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게 하시고, 잘못은 즉시 시인하고 회개하게 하소서...
3. 하나님께서 응원해주시는 은혜를 입고 살게 하소서...
4. 오늘 있을 예배가 잘 준비되어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소서...
5. 형주가 더욱 건강하게 하시고, 남은 과정도 속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소서. 그리고 안인영 집사님과 모친; Denise, Ruth, 배용민, 안혜정, 이찬희, 전은경 집사님의 모친; 실방, 윤영휘 집사님의 부친; 임종호 집사님의 장인과 이수현 집사님의 시부모님들의 건강도 더욱 온전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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